[오늘을 여는 시] 국제시장 - 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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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1964~ )

국제시장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밀려나온 피난민처럼 옛날과 비벼지는 좌판에 쭈그리고 있다 쫄깃쫄깃한 당면이 부드럽게 목청을 돋우면 앉은 어깨만큼 썰어주던 순대가 저녁만큼 길다 백열등 열기 따라 흥정의 걸음이 바쁜 불빛이 영도다리 뱃고동에 실려 간다

-시집 (2017) 중에서

국제시장에서 영도다리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2100보쯤 된다. 영도다리 뱃고동이 들리겠다. 국제시장에 가면, 지금도 사람들이 부산당면이 비벼지는 좌판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까.까마득하고 그리운 풍경이다. 순대처럼 긴 저녁이 오면 카바이드 불빛 아래의 좌판들이 떠오른다.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시절의 좌판들. 경제의 원형. ‘파산’이란 용어의 유래도 좌판에서 온 것. 600년 전 이탈리아 상인들이 고리대금업을 못 이겨 좌판을 부숴 버린 데서 나왔다. 영어로 파산을 의미하는 bankruptcy는 이탈리아어 bancarotta가 어원. 원뜻은 ‘부서진 상인의 좌판’쯤이다. 시인이 기억하는 좌판들이 모두 번창하기를.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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