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울경 메가시티와 문화정책
차재근 (재)지역문화진흥원 원장

부울경 메가시티, 이 말에 대한 등장 배경과 이해가 필요하다. 균형발전정책은 참여정부를 시작으로 역대 정부에 따라,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그래도 정책 일관성이 확인된 대표적인 국가정책이다. 중앙 주도의 경제성장에 따른 지역발전 모델과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인구와 자원을 비롯한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 간 불균형과 경제·사회적 격차를 심화시켰다.
역대 균형발전정책의 주요 성과를 요약하면 첫 번째, 공간분산정책 영역으로 153개 공공기관, 44개 중앙행정기관과 소속기관을 이전 완료하고, 혁신도시 10개를 건설하였다. 두 번째는 지방재정확충 영역으로 균특회계와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신설하고, 지방소득세·소비세 등을 도입, 확대, 이양하였다. 세 번째 영역은 지역혁신역량강화 영역으로 지역별 전략산업 육성과 광역경제권 정책을 도입,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R&D 예산 확대를 위한 지방대학 혁신을 강화해 왔다.
문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
지역의 문화 다양성 주목하되
세계 보편적 가치와 접목해야
문화적 방식만이 인류 문제 해결
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사람·공간·산업의 3대 전략과 분권·혁신·포용의 성과 목표로 고도화되어 혁신협의회, 지역혁신성장계획, 지역발전투자협약, 지역균형뉴딜, 24.1조 원 규모의 예타면제, 국가혁신융복합클러스터, 규제자유특구지정, 상생형 일자리, 도시재생뉴딜, 법정문화도시와 관광거점도시, 생활SOC사업 등의 구체적 성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즉, 특별지방자치단체연합인 부울경 메가시티가 있다. 신속히 진행된 특별연합규약은 4월 18일 행안부 장관의 승인, 다음 날 중앙정부와의 ‘분권협약’과 양해각서 체결로 이어졌다. 내년 출범할 특지단은 각 지자체가 위임한 18개 업무와 중앙정부가 위임한 3개 업무를 수행한다. 그중 문화 ·관광체계 구축업무에 관한 운영 방향과 철학, 가치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위임된 3가지 사무 중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에 따른 지역문화예술 상호협의체 구성·운영에 관한 사무에 대해 먼저 고민했으면 한다.
첫째, 문예진흥법은 문화 법률 중 상위법이 아닌 일반법률의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법 제2조를 보면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로 규정되어 확장, 점증되는 문화정책 영역을 담아내기엔 부족하다. ‘지역 간 상호협의체의 구성, 운영’이라는 협소한 사무는 실효적 성과보다는 형식적인 정기협의체 기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 문화예술교육진흥법 등에 규정된 내용들이 규약안에서 통섭 될 수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특지단은 아직 통합이 아닌 연합의 단계임을 직시해야 한다. 옥상옥, 또 하나의 중심부 등장의 우려가 나온다. 통합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부울경 메가시티 초유의 실험이 긍정적이고 가시적 성과로 이어져서 다음 단계를 준비했으면 한다. 가령, 그동안 과정을 소수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주도했다면, 다음 단계의 준비는 다양한 제너럴리스트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셋째, 문화는 예술영역만이 아닌 사회 제 분야와 우리 삶 모든 영역에서 작동되는 공통원리이다. 인류는 팬데믹이 가져온 이동제한, 고립과 외로움, 소통단절과 갈등 등으로 심화되는 지역화와 동시에, 정보시스템의 발달이 가져온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병리현상인 극단성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지역이 가진 자산과 특성 곧 문화다양성을 주목하되 결코 지역에 가두지 않고, 세계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관통하게 하여 ‘로컬 투 로컬’, 글로컬이 가능하게 했던 1970년대 세계 건축계가 추구한 비판적 지역주의의 관점을 추구했으면 한다.
문화정책의 언어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인류세의 끄트머리, 삶의 트렌드 변화는 매우 빠르다. 사회구조변화에의 대응, 문명치유, 문화적 재생, 인구감소와 소멸위기, 삶의 전환, 외로움의 문제, 동네 지식인과 사회적 여가 등 새롭게 요구되는 언어들은 결국 그 당위성을 다음 결언에 바탕을 둔다.
기본적 생존권 보장,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도래할 인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미래학자와 문화인류학자들의 예측대로 문화적 방식만이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