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부산항 1부두 창고, 복합문화공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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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도시 역사 창고, ‘근대 유산 가치’ 담아내는 그릇으로

부산항 1부두는 개항 이후 항만도시 부산의 역사를 증명하는 근대 유산이다. 대한민국 물류산업의 변천을 켜켜이 간직한 산업 유산이기도 하다. 북항 재개발 사업으로 제2부두와 제3부두, 중앙부두는 매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산항 관련 유산들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제1부두가 유일하다.

최근 부산시가 1부두 내 폐창고를 활용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 부산비엔날레도 1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1부두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근대 유산으로서의 위상이 크다는 방증이겠다. 1부두는 그 자체를 원형대로 보존할 만한 값어치가 충분한 공간이다.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후대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1부두 창고 활용이 중대한 시험대로 떠오른 것이다.


1부두, 국내 최초 근대식 항만
한국 근현대사 산증인 자부
피란 수도 유산 8곳 중 하나
2024년까지 폐창고 개조·활용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제공
상상력·창의성 발휘되는 공간에
한국인·부산 사람들 얘기 담아야
문화·역사적 의미 알리는 작업 필요
북항, 월드엑스포 개최지 자격 충분
태평양 시대 열어 갈 새 출발점 기대

부산항 모태 1부두의 가치

1912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항만인 1부두는 부산항, 나아가 북항의 모태다. 1937년까지 철도 관련 시설을 완비해 무역항과 철도 환승형 국제여객 부두로 사용됐다. 물론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경영과 수탈의 통로로 기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방 직후엔 수십만 명의 귀환 동포들이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목이었다. 한국전쟁 땐 피란민의 이주와 유엔군의 유입, 전쟁 물자 수송, 각종 해외 원조가 이뤄진 역사의 현장이었다. 게다가 부두는 무수한 피란민들이 의지한 생업의 터전이기도 했다. 피란 수도 부산의 눈물겨운 유산이 바로 1부두다.

이후 부산종합어시장(1961~1973)과 국제여객터미널(1977~2015) 건물이 차례로 들어섰다가 이전한 역사가 이어진다. 국제무역항에다 어시장·여객터미널 기능까지 복합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1부두의 고군분투는 숱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52년 국내 최초의 수출 화물선 ‘고려호’ 출항, 1957년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 출항, 1960년 광복 후 한·일 정기 해상항로 첫 취항, 1978년 최초로 남빙양에 도전하는 ‘남북호’ 출항 등등. 1부두가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 해양수산 및 항만의 역사 그 자체임을 웅변한다.



근대 유산의 의미 담은 공간 필요

부산항 1부두의 가치는 그 안에 근대 유산의 원형들을 품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1부두 그 자체가 근대 유산의 의미를 지닌다. 부산항 1부두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피란 수도 유산 8곳 중의 하나로서 2018년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조건부 등재된 바 있다.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보호받으려면 국가나 부산시 문화재로 지정되는 게 필수적이다. 남아 있는 일부 원형이라도 잘 보존해서 후세에 전하는 건 우리 시대의 의무에 속한다.

그중에서 1970년대 지어진 1부두 내 폐창고(면적 4000㎡)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소식이다. 부산시는 이곳을 2024년까지 공연과 전시, 창작 공간 등으로 개조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왕 옛 창고를 활용하기로 했다면 1부두의 역사와 가치를 구현하는 공간으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 아직 민간 출입이 통제된 구역인데 올해 부산비엔날레 개막을 시작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될 예정이라 자못 기대가 크다.

부산은 이미 최초의 근대식 물류창고인 남선창고를 잃은 뼈아픈 경험이 있다. 현재 붉은 벽돌 담장만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항구도시 부산의 역사와 부산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던 상징적 건물이 훼손되고 사라지는 일은 한 번으로 족하다. 1부두 창고는 그 자체를 변형하지 않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당시 원활한 물류 작업을 위한 때문인지 창고 바닥이 경사진 형태로 남아 있는데 이마저도 온전히 살리는 게 좋다.

근래 근대 건물을 재활용한 사례로는 옛 서울역을 살펴볼 만하다. 1925년 건축된 서울역은 2004년 철도역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하고 2011년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진행되는 전시와 공연 등 문화 프로그램들이 옛 서울역 건물의 본래 기능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인들의 희로애락과 80년 숨결이 스민 서울역은 두말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이다. 그런 역사의 흔적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없다면 복원은 의미가 없다. 건물 외형뿐만 아니라 무형의 일상적 흔적까지 담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근대 유산을 대하는 아주 중요한 관점이다. 부산항 1부두 창고가 제대로 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면 옛 서울역을 반면교사로 삼는 섬세한 안목이 요구된다.



과거를 기억하는 핵심은 생명력

창고는 인류의 정주 생활과 함께 공존해 온 시설물이다. 생산물을 보관하던 창고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옛 기능을 잃고 새로운 것을 기획·창조하는 곳으로 변신한 사례는 숱하다. 전시장이나 공연장, 버스킹 공간, 론칭 장소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에 따라 생명력 넘치는 무궁한 가능성의 공간이 되고 있다.

1부두 창고의 변신 역시 상상력과 창의성이 발휘되는 공간으로 가는 게 맞는데, 그 핵심은 부산항이라는 공간을 채운 한국인들,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그 속에 있었던 무수한 삶의 애환과 영욕과 다양한 층위의 흔적들 말이다. 이게 스토리로서 전해질 때 무형의 가치는 더 큰 빛을 발한다. 1부두 같은 근대 유산이 과거와 현재·미래의 기억이 만나는 곳, 시민들의 일상과 만나는 친근한 공간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지역의 문화 축제로 승화되고 지역 활성화도 덩달아 일어난다.

“항만 역사가 바탕이 되지 않는 항만 재개발은 세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개발지나 거대한 하드웨어만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항만이 다시 살아 움직이려면 지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여가와 문화의 보고이자 장소가 되어야 한다.”(강동진 )



월드엑스포 유치에 날개 달아야

150년 역사를 가진 재래 항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부산항 1부두를 모태로 하는 북항은 단순한 부두가 아니라 근대 역사의 살아 있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북항은 월드엑스포 개최지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는다. 북항이 2030 부산월드엑스포 부지로 선택되려면 문화적, 역사적 가치들을 콘텐츠로 담아내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작업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라마 ‘파친코’가 부산의 변방 영도를 전 세계에 알렸듯, 1부두의 역사를 간직한 북항 역시 한반도의 태평양 시대를 열어 갈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부산항 1부두라는 문화유산의 가치, 그것을 담아낼 공간의 중요성이 그래서 더욱 각별해진다. 북항의 미래를 위해서도, 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도, 도시 부산의 자긍심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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