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경계의 틈, 바다… 그곳을 건넌 사람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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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사업단 ‘해역인문학’ 강좌
총서 ‘바다를 건넌 사람들Ⅱ’ 발간

역사의 우연과 필연이 무한의 수량으로 출렁거리는 바다는 국경을 넘나드는 경계의 틈이다. 바다, 섬, 해안가를 아우르는 ‘해역’은 일국 속에 포함된 지방이면서 그것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의 ‘해역인문학’은 탈국가, 탈경계, 로컬리티, 접경 등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 경계를 넘는 이동과 교류에 주목한다. 이 사업단이 최근 출간한 〈바다를 건넌 사람들 Ⅱ〉(산지니)는 해역인문학 시민강좌 네 번째 총서다.


10명이 쓴 10편의 글을 3부로 구성했는데 1부는 역사를 만든 해적들 이야기 3편이다. 고려 바다에 나타난 14세기 전기 왜구는 동아시아 격랑의 표현이었다. 팍스 몽골리아의 균열 속에서 왜구는 약탈의 대명사였으나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고, 부산이 남부 해안 국경으로 역사 전면에 서서히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연 동북아 바다는 해금령(海禁令)으로 꽁꽁 묶여 있었던 게 아니다. 17세기 해적왕 정성공은 복건 연해를 장악한 뒤 명나라 부활을 위해 10만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를 쳤다. 하지만 수포로 돌아가 대신 네덜란드가 점령하고 있던 대만을 수복했다. 현재 대만의 영웅으로 ‘맥주 상표’ ‘대학 이름’으로 남아있는 정성공은 일본의 섬 히라도에서 태어났다. 동북아 바다를 가로지르는 탈국경의 네트워크가 있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남중국해를 장악한 해적연맹은 베트남 반란군과 힘을 합쳐 세력을 키웠으며, 그중 가장 강력한 ‘홍기방’의 장바오는 해적의 전설로 이름을 전하고 있다.

동북아 바다에는 표류의 전설, 기록이 전하고 있다. 1802년 문순득은 흑산도 인근 바다에서 표류해 류큐 마카오 필리핀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정약전의 〈표류시말〉이다. 1696년 동래의 이지항은 강원도 원주로 출항했다가 풍랑을 만나 홋카이도에 표착한 뒤 일본 열도를 쭉 거쳐 쓰시마-부산포에 11개월 뒤 당도했다. 1687년 김대황은 멀리 베트남까지 표류했다가 중국을 거쳐 16개월 만에 제주도로 돌아오기도 했다. 바다가 경계를 넘어서는 주목할 장이었다는 거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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