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아리스토텔레스와 못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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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권력 쟁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식 권력정치가 난무하고, 여기에 ‘내로남불’로 상징되는 아전인수식 ‘정치의 윤리화’와 ‘윤리의 정치화’가 동시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기인한다. 정치를 권력정치만으로 이해한다면 정치에서 윤리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정치를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다분히 순진한 이상이고, 권력 획득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이해된다. 반면, 정치를 윤리적 판단만으로 이해한다면 정치에서 마키아벨리식 권력정치는 자리를 잡기 어렵다. 정치는 ‘유용한 것’보다 ‘바른 것’과 ‘옳은 것’ ‘선한 것’에 기초해야 한다는 시각이 바로 정치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더 강조하는 입장이다.

수단 가리지 않는 한국 정치 문제
권력 쟁취·윤리적 정당성 가치 상충

내로남불 이중 기준 충돌 불가피
갈등 방치는 국가 공동체에 해악

불평등·불공정·혐오 개선 방안 명시
합의로 윤리 규범 법제화 나서야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선출된 정치인들은 냉정한 현실주의적 권력정치를 통해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선거 정당성’도 지녀야 하고, 깨끗하고 선한 ‘윤리적 정당성’도 지녀야 하는 이중의 정당성 부담을 안고 있다. 이처럼 한국 정치는 지금 권력정치와 윤리정치 그리고 선거 정당성과 윤리적 정당성이 공존하면서도 상충하는 혼란과 모순의 공간에 놓여 있다. 권력정치에서 살아남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인들은 비윤리적 정치도 수행해야 하지만, 이로 인해 윤리적 비판에 직면하는 이중적 기준의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판단 기준은 하나여야 한다. 기준이 여러 개면 혼란과 분쟁이 불가피하다. 현재 한국 정치가 직면해 있는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 상태는 바로 이러한 이중의 정당성 요구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중의 정당성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를 윤리적 판단과는 무관한 현실주의적 권력정치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정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팽배하다. 한국 정치에서 현실주의적인 권력정치 측면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윤리적 정당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한국 정치가 직면한 윤리적인 문제는 시민과 정치권이 합의해서 공적 윤리 규범을 만들고 그것을 법제화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은 공직 후보자가 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와 그것의 법제화로 공직자 인사청문회마다 불거지는 내로남불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렇듯 한국 정치가 겪고 있는 윤리적 정당성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은, 국민이 심의와 합의를 통해 공적 규범을 만들고 그 규범을 법제화하고 복종하는 데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의미 있는 주장을 펼쳤다. 법의 지배와 다수의 지배가 충돌하는 경우 어느 쪽에 최종 권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최종적인 권위는 법에 대한 복종 즉, 법치주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조건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법치주의의 우위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수가 민주적 심의 과정을 거쳐 현명한 판단을 통해 만든 법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수의 판단보다 다수의 판단이 더 현명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서 소수의 판단이 아니라 다수의 판단이 법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민주적으로 다수에 의해 더 현명하게 만들어진 법이 올바른 법이고, 그렇게 제대로 만들어진 법의 지배에 한해서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에 우위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민 다수의 현명한 판단과 합의에 기초해서 제정된 법에 대한 복종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선순환적인 상호 균형 관계에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미 과도한 수준에 오른 지역, 이념, 세대, 계층, 계급, 남녀, 이대남·이대녀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이런 갈등이 만든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 공동체의 발전과 국민 행복을 미래적 전망에서 확보하기 어렵다. 이제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공적 규범 만들기가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정치인과 국민이 민주적 심의를 통해 올바르고 제대로 된 공적인 윤리 규범을 만들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법률이나 헌법에 이들 갈등이 불러온 고착화 된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 혐오, 차별, 배제를 개선할 방안을 하나하나 합의해서 명시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내로남불의 악순환에 빠져 서로 퇴행적인 네 탓만 하고 있기에는 대한민국 국격과 다수 국민의 수준이 너무 높다. 이제는 이 못난 정치를 국민들이 민주적 합의로 만든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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