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68. 부산의 역사를 더듬게 하는, 우신출 ‘영가대’

부산시립미술관의 부산미술 소장품 중 작품 제작연도가 가장 이른 작품은 1929년으로 기록된 우신출(1911~1991)의 ‘영가대’이다. 우신출이 1928년부터 서양화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증언과 기록 그리고 작품 화면 하단의 작가 서명 위에 희미하게 표기된 연도 때문인지, ‘영가대’는 종종 1928년 작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91년에 작고한 우신출의 유작전이 이듬해인 1992년 서울 예맥화랑에서 개최됐는데, 이 작품 뒷면에 ‘92년 유작전’에 출품했다는 기록과 함께 제작연도가 1929년으로 적혀 있다.
우신출은 1990년 인터뷰에서 “1928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작품을 모아 회고전을 가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생전 회고전은 열리지 못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미술 1세대 작가를 다룬 연속 기획전시 ‘부산의 작고작가’ 다섯 번째 작가로 우신출을 조명하며 이 작품을 우신출이 서양화를 배우기 시작한 이듬해 그린 최초의 작품으로 소개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부산시립미술관은 ‘영가대’를 포함한 우신출 작품 다수를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영가대’이지만, 그림 정중앙에는 영가대 대신 전차가 보인다. 화면 왼쪽 하단에서 사선으로 시작하는 좁은 흙길을 따라 낮은 계단을 오르면,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석축 언덕 위에 작은 전차 한 대가 놓여 있다. 전차 양쪽으로는 언덕 위 선로와 평행을 이룬 여러 가닥의 전선을 전신주가 떠받치고 있다. 잎이 우거진 나무와 나뭇가지만 사방으로 뻗친 나무가 전차를 중심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각각 한 그루씩 교차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에 의해 ‘영가대’는 상-중-하로 나뉘는 수평 구도와 좌-중-우로 나뉘는 수직 구도를 얻는다. 그 사이 개별요소로서 사선과 대칭을 적당히 활용하여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를 일궈내는 풍경화가 된다.
영가대는 임진왜란 이후 1614년 망루를 겸해 부산포에 세워진 누각이다. 이곳은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의 안전을 기원하며 해신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했다. 영가대 선착장은 제국주의 시대 도래 후 일본인 자본가들이 수송과 수탈을 위해 진행한 경부선 철도 공사 때 매축됐고, 그 이후로 점차 이곳의 풍경은 달라져 간다. 대한제국의 주권이 완전히 강탈되며 일제 통치가 시작되는 해인 1910년을 전후로 부산 동래선이 완공된다. 1915년에는 부산진과 동래온천을 오가는 전차가 놓이고, 1917년 전차 선로 부설과정에서 이 영가대는 사라지게 된다. 1915년에 개통된 부산 전차는 1968년에 철거됐다.
영가대가 사라지고 전차가 오가는 중에도 아마 이곳은 사람들에 의해 영가대로 불리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신출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이곳의 풍경을 회화로 포착하고 작품의 제목을 영가대라 붙였는지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은 작품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강선주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