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손흥민에게서 '드록神'의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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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스포츠부장

23일 새벽 많은 한국 축구 팬들의 눈길은 TV로 향했다. 멀리 영국에서 벌어지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시즌 마지막 경기에 시선이 집중됐다. 그리고 전·후반 90분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상상이 현실로 구현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됐다. 손흥민이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득점왕에 등극한 것이다.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 누구든 쉬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시아인이 세계 최고 축구리그인 EPL에서 득점왕에 오른다는 현실을. 손흥민 자신도 어릴 때부터 꿈꿔 온 순간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믿을 수 없다”며 감격할 정도였으니.


손, 월드 스타 드로그바와 유사 행보 밟아
각각 아시아·아프리카 최초 득점왕 등극
모든 득점 페널티킥 없이 필드 골로만 넣어
단짝 케인·램파드와 EPL 합작 골 기록도

노리치 시티와의 최종전에서 네 번의 기회를 놓치며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손흥민이 마침내 골을 터트리자, 일부 아파트에선 환호성이 울리기도 했다. 마치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승전보를 전했을 때와 같이. 그만큼 우리들의 바람도 간절했던 것이리라. 이날 스포츠 매체 스포티비에 따르면 토트넘과 노리치의 최종전 시청률은 5.4%를 찍어 스포티비 단일 채널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손흥민이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13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독일 함부르크SV 소속이던 2010년 8월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FC와의 친선경기 때였다. 손흥민이 존 테리, 히카르두 카르발류를 제치며 결승 골을 터트린 장면이 눈에 쏙 들어왔다.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세계적인 스타들을 과감하게 농락(?)한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경기 뒤 손흥민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드로그바가 내 유니폼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러 당시 세계 최고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가 자신의 유니폼을 받았다며 좋아하던 소년이 이제 ‘드로그바급’의 ‘월드 클래스’로 훌쩍 성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드로그바와 손흥민은 묘하게 겹치는 기록들이 있다.

손흥민이 올 시즌 공동 득점왕에 오른 모하메드 살라흐(리버풀FC)보다 더 인정받는 부분 중 하나가 페널티킥 득점 없이 23골 모두를 필드 골로만 넣은 점이다. 마찬가지로 드로그바도 2006-2007시즌 20골로 EPL 득점왕에 올랐을 때, 페널티킥 골이 하나도 없었다. 드로그바는 2009-2010시즌에도 득점왕에 올랐는데, 리그 29골 중 단 1골만 페널티킥 골이었다.

손흥민과 드로그바 둘 다 유럽인의 시각에선 ‘축구 변방국’ 출신이란 사실도 눈에 띈다. 손흥민이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을 거머쥐었듯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드로그바도 2006-2007시즌 아프리카인 최초로 EPL 득점왕에 올랐다. 한국과 코트디부아르는 두 선수로 인해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 리그 134년 역사상 단 13개 나라에만 허락된 득점왕 배출국에 당당히 포함됐고, 자국민들의 ‘축부심(축구 자부심)’도 한껏 고양됐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드로그바가 프랭크 램파드와 명콤비를 이뤘듯, 손흥민은 ‘단짝’ 해리 케인과 많은 골을 합작해냈다는 점이다. 드로그바-램파드 콤비가 가지고 있던 EPL 역대 최다 합작 골(36골) 기록을 넘어선 콤비가 손흥민과 케인이다. 현재 41골을 합작한 손흥민-케인 듀오의 합작 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손흥민은 평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우상으로 꼽았다. 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 그의 행보는 드로그바에 가까워 보인다. 드로그바는 EPL 정규리그에서 통산 104골을 넣었다. 현재 93골을 작성한 손흥민이 다음 시즌 10골만 더하면 104골을 돌파한다. 손흥민이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20골), 바이엘 레버쿠젠(29골)을 거쳐 토트넘(131골)에 이르기까지 성인 무대에서 넣은 골은 모두 180골이다. 부상 등 큰 변수가 없다면 드로그바의 통산 210골 기록도 2~3년 내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드로그바는 첫 EPL 득점왕 등극 후 두 시즌 만인 2009-2010시즌에 다시 EPL 득점 1위에 올랐다. 29골(10도움)을 터트리며 두 번째 득점왕 타이틀을 따냈던 이때(30대 초반)가 드로그바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팬들은 드로그바를 ‘드록神’으로 부르며 경의를 표했다.

드로그바(29)와 비슷한 나이에 첫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30)도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손흥민 특유의 스피드와 기술, 양발을 활용한 폭발적인 골 결정력을 감안하면 ‘골든부트’를 다시 품에 안는 일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더불어 손흥민이 ‘흥민神’으로 불릴 날도 오지 않을까.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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