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시안 인베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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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지금은 없어진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 뒤편 선술집에서 영화제 뒤풀이가 열렸다. 영화 ‘마이웨이’ 주연 배우 장동건과 일본 오다기리 조, 영화사 관계자들과 술잔이 섞이면서 밤이 깊어졌다. 영화에서 적으로 만나 1만 2000km를 포로로 끌려다니면서 서로에게 희망이 된 조선과 일본의 우정처럼, 장동건-오다기리 조의 모습이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허무는 느낌이었다. 국적이 다른 배우가 펼쳐 내는 한 편의 영화였다.

국경을 뛰어넘는 문화가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세계 3대 영화제인 프랑스 제75회 칸국제영화제가 그 현장이다.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 한국 배우 이지은, 배두나, 강동원 등이 참여한 영화의 메가폰은 일본 영화계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잡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거머쥔 박찬욱 감독. 그는 기획 단계부터 영화 ‘색, 계’로 알려진 중국 배우 탕웨이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영화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 국경을 초월해 아시아 문화의 잠재력과 감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 있다.

‘아시안 인베이전(Invasion)’의 시대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트로피 4개를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는 로컬이잖아”라고 외칠 정도로 한국 영화와 음악이 세계 문화 시장을 파고들면서 ‘코리안 인베이전(Invasion)’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이번 칸영화제로 인해 ‘아시안 인베이전’으로 확장될 듯하다. ‘한국만의 문화’라는 개념을 초월해 한국과 일본, 중국 배우와 감독, 문화 잠재력, 자본이 한데 모이면서 유행이 아니라 세계 문화판을 바꾸는 현상으로 정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어떤 국적도 없고, 언어만 다를 뿐이다.

“이웃 나라 국민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문화를 공유하는 것, 서로 싸우기 전에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 민족이 최고’라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던지고, 문화적 소통을 계속하는 것!” K팝 한류를 초기부터 주도했던 JYP 수장 박진영이 꿨던 꿈처럼 한·중·일 배우와 감독, 세계 시민이 영화를 통해 함께 울고 웃으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아시아 영화처럼 문화가 신냉전 갈등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벽을 허무는 날을 꿈꾼다. 문화 팬덤은 전쟁이나 위협, 우월감이 아니라, 감정의 공유와 소통, 결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칸을 석권한 한국 영화가 아시아의 문화와 정서, 세계의 평화를 담는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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