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설움 잘 아는 영어회화 강사들이 소외계층 도와야죠”
김미경 ‘전국교육공무직’ 부산지부장

10여 년간 일한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던 부산지역 초·중·고 영어회화 강사들이 올해 1월 경력이 인정돼 처음으로 근속수당을 받았다. 2012년부터 시작한 투쟁의 뜻깊은 성과였다.
첫 근속수당을 받던 날, 김미경(43)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장은 영어회화전문강사분과 노조원들에게 “소외된 집단이었던 우리가 이제 또 다른 소외된 집단을 돌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기부를 권유했다. 근속 1년 차 수당은 3만 9000원. 모두의 수당을 모아도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노조원 80여 명은 받은 근속수당 전부와 기금을 십시일반 모아 선뜻 후원금으로 내밀었다.
10년간 투쟁 끝에 경력 인정받아
근속수당·기금 모아 후원금 전달
“노조 성과, 사회연대로 확장돼야”
지난달 23일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 영어회화전문강사분과는 세이브더칠드런 남부지역본부를 통해 후원금 500만 원을 전달했다. 후원금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조손가정 아동들의 6개월간 학원비로 이용될 예정이다.
김 지부장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의 7기 지부장이다. 2014년 그가 재직하던 학교 측은 강사라는 이유로 교과과정을 준비할 연수 기간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목소리를 냈지만 묵인됐던 그때의 경험이 그를 노조로 이끌었다.
그를 포함한 부산지역 영어회화 강사 150여 명은 2012년부터 경력 인정과 고용안정을 위해 투쟁했다. 10년 넘게 한 학교에서 재직해도 4년마다 신규 채용 절차를 거치며 이전의 경력들은 매번 백지화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투쟁 끝에 올해 1월 부산시교육청은 ‘지금까지 일해온 시간을 인정한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부금 500만 원은 이렇게 지난한 노조의 ‘존재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였다. 김 지부장은 “단지 수당을 더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일해온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경력이 인정되는 순간, 그간 학교 현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김 지부장은 “영어가 경제적 수준에 따라 실력 편차가 두드러지는 과목인 만큼, 취약계층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이 어려워진다. 사회에서 소외된 어려움을 아는 영어회화강사들이 나서 소외계층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부 결정에는 교육공무원 노조의 투쟁 활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학교 안에서부터 평등한 관계를 만들자는 의도가 돌봄을 볼모로 자신의 처우 개선만 주장하는 목소리처럼 사회에 비치는 것이 아쉬웠다. 노조의 투쟁 성과가 노조원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연대로 확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과 노조원들은 이번 기부를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취약계층 아이들의 지원 사업에 힘쓸 계획이다. 김 지부장은 “영어회화강사들인 만큼 교육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소외당한 이들을 포용해 가며 사회와 연대하는 투쟁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