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서 대규모 호국영령 위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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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찰 최초로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된 경남 양산 영축총림 통도사가 6·25전쟁 중 산화한 희생자 등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한 호국영령 위령재를 봉행한다.

통도사는 오는 18일 현충 시설 지정을 기념하고, 6·25전쟁 중 산화한 수많은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개산대재(절의 창건을 기념하는 큰 법회) 수준의 호국영령 위령재 봉행과 산사음악회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위령재에는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과 현문 주지 스님, 국방부와 보훈처 관계자 등이 참석한다.

사찰 첫 현충 시설 지정 기념
한국전 희생자 위로 등 의미
18일 개최… 성파 스님도 참석

통도사 대웅전에서 봉행 되는 호국영령 위령재는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을 일컫는 ‘범패’로 시작된다. 관세음보살의 강림을 엎드려 청하는 의식인 복청게 천수바라를 시작으로 소생하지 못한 중생들을 불러들여 죄를 참회시키며 좋은 업을 쌓게 하는 도랑게 나비무, 법고무로 이어진다. 황화게 나비무와 회심곡, 불특정 다수의 영가에 대해 극락세계 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인 ‘화엄시식’으로 끝을 맺는다.

통도사는 또 삼성반월교 옆 무대에서 산사음악회를 연다. 음악회에는 양산윈드오케스트라와 통도사 우담바라합창단, 소프라노 왕기헌, 테너 양승엽 등이 출연해 호국영령들을 위로한다.

앞서 통도사가 6·25전쟁 때 육군병원으로 운영됐다는 사실은 노스님과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알려졌으나, 국가 기록은 물론 객관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 9월 통도사 용화전 미륵불소좌상의 복장 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용화전 미륵존불 갱 조성 연기’에서 처음으로 이 사실이 확인됐다. 연기문은 통도사 구하 스님이 1952년 붓글씨로 쓴 것으로 “경인년 6월 25일 사변 후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해 (불기) 2979 임진 4월 12일에 퇴거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인년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이며, 임진년은 1952년이다.

이듬해 6월에는 대광명전에서 전쟁 당시 장병의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대거 발견됐다. 낙서는 못과 연필, 칼 등으로 새긴 것으로 ‘4284년 5월 29일 도착하여 6월 12일 떠나간다’, ‘통도사야 잘 있거라, 전우는 가련다’ 등이다. 모자 쓴 얼굴과 건물 그림, 탱크와 트럭 그림 다수도 발견됐다.

또 육군병원 분원이 대전에 있다가 1951년 1·4 후퇴 직후인 1월 6일 부산 동래로 이전했는데, 병실이 모자라 통도사를 육군병원 분소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찾아냈다. 당시 수용 인원이 1552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1994년 성보박물관 토목공사 당시 땅속에서 주사기와 약병 등이 대량 발견됐다는 증언과 당시 위생병으로 복무한 참전용사와 통도사 정양원을 방문했다는 마을주민 등의 증언도 이뤄졌다. 이후 통도사는 이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5월 국가보훈처 울산보훈지청에 통도사 전체에 대한 현충 시설 지정을 신청했고, 같은 해 11월 지정 통보를 받았다.

통도사는 현충 시설 지정이 이뤄짐에 따라 호국영령 위령재 봉행과 현충 시설 조성을 추진하기로 했고, 드디어 오는 18일 호국영령 위령재를 봉행하는 것이다.

통도사 관계자는 “그동안 호국영령을 위한 위령 의식을 봉행해왔지만, 올해는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현충시설로 지정받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개산대재 수준의 위령재를 봉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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