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달라진 세상에 달라지는 복지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이달부터 삼성전자가 증가하는 1인 가구 추세에 발맞춰 기혼자 중심이던 임직원 복지제도를 개편한다고 밝혔다. 예컨대 이전에는 기혼 직원에 한해서만 결혼기념일에 관광상품권을 지급했다면 앞으로는 복지제도를 확대 적용하여 미혼 직원에게도 본인 생일에 상품권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대기업의 복지제도가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는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 같은 가정 중심적인 제도가 주를 이뤘지만 이러한 복지 방향이 지금의 젊은 직원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2030 세대는 이직을 활발히 하며 근속연수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적어도 20년 후에나 누릴 수 있는 자녀 학자금 복지 혜택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더구나 젊은 직원 중에는 해당 복지와 영영 무관한 비혼족이거나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의 비중도 상당하다.
가족 중심 복지제도에 변화 물결
젊은 층 당장의 확실한 혜택 원해
사내 복지는 여전히 소수에 한정
수혜 격차 따라 일자리 다툼 치열
국가 보장 보편적 복지 확대 필요
보장 체계 개편 고민해야 할 시점
대기업에 비해 조직 구성원이 젊은 스타트업은 대체로 사내 복지제도를 근무 당사자인 직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운영한다. 근속에 따른 리프레쉬 휴가, 어학 교습비와 도서비 같은 자기 계발비 지원, 최신 장비 제공, 무제한 식대와 간식, 전면 재택근무 등이 그 예다. 2030 세대에게 복지제도가 우수한 스타트업 기업은 취업시장에서 대기업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우수한 복지 혜택은 여전히 소수의 근로자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다.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는 임금을 비롯한 복지와 처우 전반에서 그 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지며 대졸 구직자의 대기업 선호 현상과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개인 중심으로 개편되는 기업 복지제도와 기업 규모에 따라 심화되는 복지 차별의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지금보다 국가 복지제도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재벌기업이 정치권력과 유착하며 성장한 역사를 통해 대기업은 특혜를 받는 대신 정부의 복지 역할을 일부 분담해 온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기업이 학자금을 부담하기 이전에 국가 장학금 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 조부모를 돌봄 노동에 참여시키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직장 어린이집을 기대하기 이전에 관영 탁아시설이 확충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정부는 의료비와 교육비 분담, 양육 지원과 같은 국가의 역할을 개인이나 기업에게 전가할 수 없으며 보편적으로 기능해야 할 복지제도를 소수만 누리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복지공급의 주체로서 책임 범위를 넓혀야 한다.
장경섭 사회학자가 쓴 책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과거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할 때 서유럽 모델을 참고했다고 한다. 서유럽 복지모델은 국가의 사회보장체계가 정규직 고용과 제도적으로 연동된 시스템이다. 서유럽 사회의 특징은 노동자 권익이 굉장히 강하고 고용 안정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MF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정규직 일자리가 감소하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폭 증가하며 고용 안정성이 낮아졌다. 사회보장제도의 운영 전제가 고용 현실과 상충하는 지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 확보는 결국 일생 전반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에 다름 아니게 된다. 직장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편차가 증폭되며 취업 결과는 단순히 연봉을 넘어 삶의 질 차원에서도 유의미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신자유주의 여파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대되었고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건실하지 못해 취업 결과에 따라 복지의 수혜 정도가 지나치게 차별적이기 때문에 청년들은 자연히 일자리 싸움에 전투적으로 임한다.
취업전쟁은 20대 젠더 갈등에 불을 지핀다. 20대 남성은 취업 시 군 가산점제 부활과 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장한다. 이에 맞서는 20대 여성은 출산과 육아, 경력 단절로 인해 취업시장에서 부당하게 차별받는다고 주장한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경쟁에서 두 주체는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적이 되어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모두가 대기업과 정규직으로 요약되는 같은 방향만을 바라보지 않으려면 고용 형태와 취업 기관, 일자리와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국가가 사회보장 주체로 나서야 할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의 문제를 가족에게 알아서 부양하도록 떠넘겨 왔다. 그러나 현대 개인주의 사회에서 가족에 의존하는 사회보장체계는 세대 간 가치관이 충돌하며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삐걱거린다. 기업복지가 바뀌고 있는 것처럼 국가복지 제도도 인구 구조와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개편 방향과 다양성 확보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