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재밌는 도시, 그 속의 즐거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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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부산은 재밌는 도시일까? 이곳에 사는 우리 일상은 즐거운가?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외지인들은 부산이 흥미로운 도시라고 한다. 얼마 전 국내 한 언론사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살고 싶은 도시 순위’ 조사에서 부산은 서울 다음으로 꼽혔고, 전문가 대상의 학회 개최지에선 부산이 국내 최고의 선호 도시로 나타났다. 올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2편의 한국 영화가 모두 부산에서 촬영될 만큼 부산은 외부에서 바라보면 ‘흥미롭다’라는 시각이 강하다.

그렇다면 부산에 사는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현재 우리가 사는 지역이, 동네가 ‘재밌다’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 점심 먹고 일하고, 회식에서 술 마시고…. 마무리는 노래방.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 연말 상여금 기다리며 보내는 한 해.’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한 지인의 SNS 댓글 중 한 구절이다. 이런 게 평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도시경쟁력에 갈수록 ‘즐거움’ 중요

전통 인프라 외에 음식·문화 부상

좋은 조건 갖춘 부산, 강점 살려야 


코로나 상황은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마저 흔들어 놓았다. 심지어 그런 무료한 일상마저도 그립게 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지?’라며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 또한 제공했다. 이제 코로나는 거의 끝나 가고 있다. 일상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 대학에서는 축제가 다시 열리고, 거리와 식당은 사람들로 붐빈다. 유명 여행지의 예약은 벌써 마감되었고, 해외 여행객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일상 회복의 대전환 속에 우리가 사는 도시 속 즐거움은 과연 무엇일까?

컨설팅 기업인 머서(MERCER)는 해마다 삶의 질을 평가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를 선정해 발표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취리히, 캐나다 밴쿠버가 10여 년째 여전히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부산은 생활 환경 순위에서 아시아 13위에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에 있다. 우리가 익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택, 교통, 환경 등 정주 여건 외에 지역음식(local food), 스포츠클럽, 연극, 영화, 도서관 등의 음식과 문화, 여가 활동이 주요 지표로 포함돼 있다. 도시의 경쟁력이 단순히 주거(living)와 경제 활동(working)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재밌는(fun) 도시인지 아닌지?’가 그 도시의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판가름한다.

예전 일본 후쿠오카 전철역의 도서 대여 시설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 목적은 사람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라는 도서관 관계자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도서관까지 방문할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는 거창하진 않아도 도시 삶의 재미를 높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여름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했을 당시 보았던 취리히 호수. 호수 위 대형 물놀이 기구에서 다이빙하던 청년들의 모습은 왜 그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인지 보여 준다. IT와 전기차 등 첨단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미국 오스틴시의 공식 구호는 여전히 ‘세계 라이브뮤직의 수도’다. 매년 10월이면 ‘오스틴 시티리미트(Austin City Limit)’라는 2주간의 음악 축제로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평소에도 시는 라이브뮤직을 도심, 공항, 어린이 놀이터 등 곳곳에서 일정 시간 연주할 수 있게 공간을 제공하고 음악인들에겐 일정액을 지급하고 있다. 오스틴시는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다.

서울시도 도시 곳곳에 주말마다 보행전용 공간을 제공했다. 물론 코로나 이전 일이다. 처음에는 광화문 등 도심지를 중심으로만 시행했지만, 점차 구청별로 넓혀 갔다. 그곳에서 공연, 프리마켓 등을 열어 시민들에게 일상의 즐거움을 제공했다.

이제 도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주거와 교통 이외에 일상의 즐거움을 제공할 기능을 적극적으로 갖춰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물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의사소통의 결과로서 나타나야 하지만, 공공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도시계획학과 학부 강의에 등장한 강의가 있다. ‘맥주와 도시’ ‘영화와 도시’라는 과목인데, 재밌는 도시의 최신 경향을 보여 준다. 부산은 재밌는 도시가 되기 위한 다양하고 좋은 조건을 갖췄다. 바다, 영화, 지역음식, 스포츠 외에 최근엔 커피도시로서의 명성도 높아지고 있다. 주택, 교통 등 전통적 도시계획에 덧붙여 일상적 삶이 가능한, 문화가 있는 재밌는 도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도시 어느 곳에 살든 저녁 산책이 가능한, 주말에는 거리 공연을 볼 수 있는, 맛있는 커피를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소박하지만 재밌는 동네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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