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박세익 지역사회부장
지난달 24일, 미국 텍사스주 최남단 소도시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 이곳에서 발생한 난데없는 총기 난사 사건이 세계인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어린 초등학생 19명과 성인 2명이 처참하게 생명을 잃었다. 범인은 갓 18세를 넘겼다. 세상 어느 곳보다 아이들이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1년간 체류하며 경험한 텍사스는 아이들 안전이라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곳이었다. 총기가 허용되는 사회 환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웬만한 초등학교는 완전히 봉쇄돼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다. 교실에 보조 교사를 두고, 체험학습 등 활동을 할 때 치밀한 안전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어디에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그걸 막 ‘합법적으로’ 총기를 손에 쥔 청소년이 뚫어 버렸다.
이후에도 총격 사건이 잇따르면서 미국 사회가 다시 들끓었다. 그러나 합법 혹은 불법 총기가 인구보다 많은 미국에서는 ‘총으로부터 나를 지킬 방법은 총밖에 없다’는 인식이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뼛속까지 새겨져 있다. 그러니 ‘킬링 필드’ 쳇바퀴 탈출은 영원히 불가능해 보인다.
최고 치안·경제 성장 자랑하는 대한민국
아이들 안전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
세계 최고 저출산 국가 오명 벗으려면
안전 강화·교육 혁명 전력 다해야
요즘 이른바 ‘국뽕’ 영상 콘텐츠를 많이 접한다. 총기가 허용되지 않고 시민의식이 높은 대한민국이어서, 치안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고 외국인들이 칭송한다는 내용이 많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총기처럼,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차량이다. 모든 것이 다닥다닥 붙은 도시 속 차와 차, 차와 보행자의 거리는 너무나 가깝다. 드넓은 미국에서 총 맞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할 확률이 더 높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경남 거제시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학교 후문을 나와 인근 횡단보도로 향했다. 녹색 신호를 보고 길을 건너던 아이는 노란색 학원차량에 치었고, 차량 아래에 걸려 120m를 끌려가다 튕겨 나왔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크게 다친 아이는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50대 가해 운전자는 아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풍선 효과’ 탓이 컸다. 지난해 말 정문 앞에 CCTV가 설치되고 주정차 단속이 강화되자, 학원차량들이 후문 쪽으로 몰렸다. 편도 1차로인 후문 인근에 차량과 아이들이 뒤엉켰다.
스쿨존에서 이런 큰 사고가 났지만, 언론마저 단순 사고로 치부하며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사고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다룬 보도 덕인지, 거제시가 행정안전부와 경남도, 경찰, 지역 정치인, 주민들과 함께 현장 점검을 거쳐 구체적인 개선 대안을 뒤늦게 내놓았다. 후문 앞 픽업존 설치와 도로 확장, 신호등 설치 등이다. ‘후시지탄’이긴 하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간혹 거리에서 줄지어 이동하는 초등학생 무리를 목격한다.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건 잠시,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뒤따라 솟구친다. 대부분 교사 한 명이 아이들을 인솔하는데, 어린 학생들을 이끌기에 위태로워 보인다. 줄이 길어 적색 신호로 바뀌어도 아이들이 횡단보도에 남아 있는 장면도 자주 목격했다.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사고는 한순간이다. 맨 뒤에서 아이들을 보살필 보조 교사나 자원봉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에서 2019년 28명, 2020년 24명, 지난해 23명의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귀한 목숨을 잃었다. 2020년 3월 시행된 ‘민식이법’ 덕에, 2016년 어린이 10만명당 1.2명이던 사망자는 지난해 0.4명 수준까지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부상자와 사고 건수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통사고로 다친 어린이는 2020년 1만 500명, 지난해 1만 978명이었다.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은 2018년 1만 2543명에서 크게 줄지 않았다. 사고는 2020년 8400건에서 지난해 8889건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는 2020년 507건(사망 3명)에서 지난해 563건(사망 2명)으로 증가했다.
2020년 교통사고 어린이 부상자의 학년은 2학년(72건), 3학년(65건), 1학년(62건) 순으로, 저학년이 다수를 차지했다. 거제 스쿨존 사고처럼, CCTV 설치 이후 전국의 스쿨존 교통 환경을 지금이라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 최고의 치안, 단기간에 급성장한 경제 대국이란 뿌듯함 속에 ‘놀라운 저출산 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은 누가 뭐래도 아이들을 지켜내고 키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나라다. 우리에게 안전 혁명, 교육 혁명이 그래서 가장 시급한 숙제다.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