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에 빠진 우크라 곡물 수출길… 창고선 썩어 나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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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식량 위기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우크라이나 창고에서는 곡물이 썩어갈 처지에 놓였다. 이에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을 하루빨리 열어줘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항구 기뢰 제거를 요구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이를 악용해 오데사항을 쳐들어올 것”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쉽사리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2개 항구에서 곡물을 수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날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베르?첵뵀? 항구와 마리우폴 항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곡물을 선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그러나 러시아의 이러한 주장을 독자적으로 검증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마리우폴과 베르?첵뵀? 항구가 있는 아조우해는 흑해보다 얕아 항구엔 작은 배들만 접근할 수 있다. ‘곡물난 해소’에 큰 도움이 못 될 수도 있단 얘기다.

오데사항 봉쇄로 2000만t 쌓여
항구 주변 기뢰 수천 개 떠다녀
러 침공 노출 우려에 제거 난색
최악의 경우 내년까지 지속 전망

최대 관건은 흑해에 있는 우크라이나 주요 항구 오데사다. 이곳은 여전히 봉쇄돼 있고, 2000만t 이상의 곡물이 발이 묶여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 가을까지 이 물량이 7500만t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10주 내 봄철 수확한 곡물이 쏟아져나올 예정인데, 전쟁 여파로 더는 저장할 공간이 없어 이 물량들이 모두 ‘처치 곤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앞서 오데사 등 주요 항구가 봉쇄되면서 우크라이나 당국은 기차와 트럭 등을 통한 수출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앞서 지난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화물선 통행을 보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 중 하나가 기뢰 제거였다. 하지만 7일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흑해 항구 주변 해역에 설치된 기뢰를 제거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밝히며 난색을 표했다. 마르키얀 드미트라세비치 우크라이나 농업식품부 장관 보좌관은 “흑해 항구 주변에는 수천 개의 기뢰가 떠다니고 있다”면서 “이 기뢰를 제거한다면 작업이 연말까지 걸릴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이어온 터키가 중재자를 자처하며, 기뢰 제거 작업까지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장 기뢰가 제거될 경우 오데사 등 주요 항구가 러시아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거절했다. 기뢰 문제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흑해 선박 운항 안전 문제를 확신할 수 없어 곡물 운송을 주저할 수도 있다.

국제곡물협회 아르노 프티 회장은 가디언에 “우크라이나 농업인들이 수출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면 내년 생산량을 줄이려 할 것”이라면서 “시장의 혼란이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전쟁 여파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40% 가까이를 수입하는 아프리카는 곡물 가격이 약 23% 급등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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