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백성을 버린 전쟁’ 한국전쟁은 ‘서로 죽이기 게임’
역사의 변명/임종권
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내걸고 있다. 역사는 늘 피지배층을 배제하면서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록된 ‘그들만의 역사’였다는 거다. 특히 역사 기록은 대부분 지식을 독점한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미시사와 일상사의 관점도 참조하면서 권력과 이념의 역사가 아니라 백성들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거다. 책은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정국, 그리고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재해석한다.
조선~남북 분단까지 우리 역사 재해석
‘거짓이 진실로 포장된 역사’ 들춰내
일례로 김은국의 소설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의해 평양 시내에서 14명의 목사가 체포돼 12명은 죽고 2명만 살아남았다. 죽은 12명은 순교자로 추앙받고 살아남은 2명은 배교자로 낙인찍힌다. 그런데 사실을 캐보니 12명은 신앙을 저버리고 목숨을 살려달라며 비굴하게 애원해서 처형당했고, 살아남은 2명은 죽음 앞에 의연하게 신앙을 지켜서 살아남았다는 거다. 사실을 알게 된 대위와 대령은 입장이 다르다. 대위는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져야 한다”고 했고, 대령은 “진실은 덮어두어도 진실”이라고 했다. 결국 진실은 은폐되고 죽은 12명은 참 신앙인이자 순교자로 추앙받는다. 역사 속에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거짓이 진실로 포장돼 있다는 것을 형상화한 대목이다.
책은 그 포장을 걷어내면서 조선을 사대부가 지배층이었던 나라이며, 임진왜란은 백성을 버린 전쟁이었으며, 병자호란은 사대주의의 비극이 낳은 전쟁으로 본다. 임진왜란 때 왜 많은 백성들이 왜군에 가담했을까. 왜군이 점령지역에서 양반 지주들의 곡식을 약탈하는 대신 피지배층 농민들에게는 조세 부담을 4분의 1 이상 낮추었기 때문이다. 양반 지배층의 탐욕과 위선에 질린 농민들이 볼 때 나라나 양반 지주보다 왜군이 외려 더 관대했다.
임란 와중에 유성룡이 면천법을 주장했다. 공을 세우면 천민에서 벗어나게 해주자는 거였다. 이게 먹혔다. 백성들은 힘을 모아 왜군에 다시 저항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유성룡은 탄핵·파직되고 각종 면천법이 폐기되면서 조선은 다시 강고한 사대부 지배층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것이 세도정치까지 쭉 이어졌으며 결국 강제 개항으로 나라가 거덜 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었다. 나라를 말아먹는 타락과 부패에 저항하고 일어난 것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좌절했다.
책은 한국전쟁을 ‘서로 죽이기 게임’의 비극적인 절정으로 본다. 전쟁은 남북 모두에게 망각할 수 없는 깊은 원한과 증오를 심었다. 책은 “한국전쟁의 비극은 조선시대 신분 갈등과 적대감이 일제강점기에 독일운동과 항일투쟁 과정에서부터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해 해방 후 이념의 이름으로 폭발한 것”이라고 썼다. “남북 분단 역시 지배층 신분 출신 민족지도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이념 대결을 벌인 정치 구도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지배층 민초들은 죽고 탄압당하면서 남북 정권이 유지돼왔다는 거다. 진실로 포장된 거짓을 걷어내는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거다. 임종권 지음/인문서원/872쪽/4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