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연도 세계가 크게 공감할 이야기 되는 시대”
부산콘텐츠마켓 ‘BCM 콘퍼런스’… ‘파친코’ 제작팀 촬영 뒷이야기 공개
“한국에서는 이민자의 이야기가 소수(마이너)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파친코’는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메이저 스토리가 됐습니다. 우리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 중에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작은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쫓다 보면 ‘제2의 파친코’ ‘제3의 오징어게임’ ‘제5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 나올 겁니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지난 8일 개막한 ‘부산콘텐츠마켓(BCM)’의 ‘BCM 콘퍼런스’에 애플TV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제작팀이 참석했다. 행사 둘째 날인 지난 9일 오후 ‘글로벌 플랫폼 시대, 글로벌 프로젝트- 파친코, 촬영장 속의 이야기’라는 주제 아래 ‘파친코’의 공동 수석 프로듀서를 맡은 이동훈 (주)엔터미디어픽처스 대표이사가 발제를 했다.
수석 프로듀서 맡은 이동훈 대표 발제
“센텀시티역서 찍은 장면 감회 새로워”
부산·제주·오사카 사투리에 영어까지
통역 관련 현장 스태프만 30여 명 달해
선자 아버지 역 맡은 부산 배우 이대호
“버티다 보니 기회가 찾아와”
이 대표이사는 “북미 시청자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좀비 장르를 사극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보게 한 ‘킹덤’은 ‘한국에서 만드는 드라마가 우리도 즐길 수 있구나’를 알게 한 작품이다”며 “‘오징어게임’은 서바이벌이라는 장르 속에 한국적인 게임이 들어가면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또 좀비 장르와 서바이벌 장르가 결합된 ‘지금 우리 학교는’이 K콘텐츠 열풍을 이어갔다.
‘킹덤’과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은 국내 제작사가 제작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난 작품이라면, ‘파친코’는 엄연히 미국 드라마다. 이 대표이사는 “미국 제작사가 제작하고, 수 휴(허수진)라는 작가가 기획한 ‘미드’가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보면 된다”며 “수 휴 작가 겸 쇼 러너(제작 총괄)가 현재 ‘파친코 시즌2’를 집필 중이다”고 전했다. 그는 “극 중 솔로몬(선자의 손자)이 춤을 추다 지하철역까지 뛰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벡스코 인근(센텀시티역)에서 촬영한 것이다”며 “다시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밝혔다.
드라마 속 선자 아버지 역을 맡은 이대호 배우는 파친코 제작 현장과 우리 현장의 차이점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를 꼽았다. 그는 “구순열 특수 분장에 사전 준비가 많았는데, 빨리 진행되기보다는 단계를 철저하게 밟고 가는 부분이 달랐다”며 “분장 탓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음식을 씹을 수가 없어서 살이 많이 빠졌는데, 미숫가루를 먹으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는다”며 웃었다.
어부 송 씨 역을 맡은 주영호 배우는 “우리나라에서 작업을 할 때는 언어부터 수직적인 문화가 있다 보니 분야에 따라 리더 역할이 있고, 전체적인 협동이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해외 작업은 세분화 돼 있어 전문적인 느낌이 들었고, 분업화가 잘 된 특성 덕분에 정말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현장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의사소통 수단이 달라서 애를 먹은 일도 있었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한국에서는 ‘카톡’으로 일을 많이 하는데, 미국에서는 주로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하고 이메일 안에 수백 명이 참조돼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며 “미국에서 온 미술감독이 한국 스태프들에게 이메일 참조로 질문을 보냈는데, 아무도 답을 안 해 이상하다고 하기에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카톡을 다운 받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로는 ‘빨래판 사건’을 꼽았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1920년대를 찍고 있는데, 그 시절에 없던 빨래판을 소품으로 내놓아 당황했던 적이 있다”며 “아무래도 미국 스태프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이동훈 피디님과 함께 현장에 매일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극 중 사용되는 언어가 한국어, 일어, 영어에 부산과 제주, 오사카 사투리까지 나오다 보니 통역 등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스태프만 30여 명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두 수석 프로듀서는 “고증을 확실히 하고 싶었고, 촬영 모니터링도 했는데 이게 오사카 사투리인지 아닌지를 알 수 가 없었다”며 “현장의 컨설팅 코치를 믿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불확실성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대호 배우는 어린 선자의 연기를 돕기 위해 함께 바다에 들어갔다가 해파리에게 쏘인 일을 들려줬다. 그는 “영도 바닷가 신을 찍던 날 촬영이 지체돼 물을 좋아하던 아역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한 적이 있었다”며 “극 중에서 다리가 불편한 선자 아버지가 바다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들어가다 보니 목 밑까지 물이 차서 안전요원이 출동했다”고 전했다. 이어 “감정에 취해 몸이 파도를 따라 흘러갈 정도가 됐고, 나중에 옷을 벗어보니 해파리에 엄청 쏘였더라”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제가 선택한 거라 프로페셔널 한 척, 안 아픈 척 하고 뒤돌아서 약 바르고 맥주 마시며 위로를 했다”고 말했다.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이대호 배우는 “대학교 때 출석을 부르다 내 이름이 나오면 학생들이 롯데 응원가를 부를 정도로 야구 선수 이대호의 인기가 높았다”며 “나도 배우 공부를 시작했는데, 야구 선수 이대호보다 유명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선자 아버지 캐릭터를 유명한 배우들도 오디션을 많이 봤다고 들었다”며 “저에게 기회가 온 것처럼 한국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는 일어날 수 있으니, 다른 배우들도 더 버티고 함께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캐스팅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유명한 배우가 아닌, 주인공 선자를 연기할 배우를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에서 작업이 시작됐다는 뒷이야기도 나왔다. 데이빗 킴 공동 수석 프로듀서는 “화상으로 수 휴 작가와 미팅을 했을 때 그 시대에 맞는 배우가 없다면 안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며 “캐스팅을 하루 전에 끝낸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미국이 여러 플랫폼을 주도적으로 끌어가고 있는데, 추구하는 콘텐츠가 다 다르다”며 “여러분들이 준비하는 게 당장은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못 받더라도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길이 분명히 열릴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