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팬덤정치에 이용당하는 정치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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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도 넘는 정치팬덤이 다시 논란이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줄곧 ‘이재명 책임론’을 언급해 온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지역 사무실 출입문에 이재명 의원의 강성 지지자로 보이는 소위 ‘개딸’이 붙여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욕설 대자보 사진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치인을 향한 문자 폭탄이나 ‘18원 후원금’은 늘 있었지만, 의원 사무실 ‘대자보 테러’는 처음 발생한 일이다. 홍 의원은 하루 2천 통가량의 문자 폭탄은 물론 직접 찾아와 항의하기도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노사모’ 성공 자극 받아 우후죽순
최근 도 넘는 정치팬덤 다시 논란

정치 참여 긍정보다 해악 더 부각
비호감·맹목적인 극단성 부작용

지지하는 만큼 비판도 뒤따라야
견제·압박 통해 내 삶 개선 중요


그런데 정작 홍 의원도 작년 4월 당 대표 출마 시 상대 후보들에 쏟아지는 문자 폭탄을 ‘민심의 소리’라고 옹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을 두고 “경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며 두둔했다. 손혜원 전 의원은 ‘문자 참여’ ‘문자 소통’이라며 미화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강성 지지층의 과격한 행위를 옹호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팬덤정치가 일그러진 정치팬덤을 키웠다.

정치팬덤의 원조는 ‘노사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6대 총선에서 편하게 3선을 할 수 있었던 종로 지역구를 포기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부산에 출마했다. 이에 감명받은 지지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쳐 만든 게 노사모였고, 2002년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대선 이후엔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하겠다며 자진 해산하는 성숙함도 보였다. 노무현 팬덤의 성공은 팬덤정치를 촉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모임인 박사모도 2004년에 발족했다.

정치팬덤은 참여 정치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되지만, 실상 참여보다 팬덤정치에 이용돼 왔다. 지지자를 조직해 선거에 동원하고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는 팬덤정치는 크게 세 가지 해악을 가져온다. 첫째, 당내 경쟁 과정을 통해 극단적 후보를 걸러 내는 정당의 ‘문지기’ 기능을 무력화한다. 둘째, 강성 소수가 과대 대표돼 합리적 정치 과정을 왜곡한다. 셋째는 정치 혐오를 부추겨 정치 불신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정당은 한 지붕 다세대 주택이다. 특히 양당 체제에선 다양한 이념과 정파가 공생 공존하며 한 울타리 안에서 정치적 동맹을 맺고 공통 목표를 추구한다. 정당의 문지기 역할이란 당내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극단주의 세력을 고립시키고, 극단적 인물을 걸러 내어 대중성에 부합하는 후보를 선출직 대표로 올려놓는 기능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은 처음 모바일 투표 방식을 도입했고 각 후보의 득표 예측이 크게 빗나가며 문재인 후보가 압승했다. 문 후보가 걸러 내야 할 극단적 후보란 뜻이 아니다. 모바일 투표가 팬덤이 강한 후보에게 크게 유리한 방식이었고, 이는 보통·평등선거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배치되는 일이다.

노사모 이후 더불어민주당 계열은 20년간 조직된 팬덤이 당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팬덤은 비단 당의 문지기 기능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 정치 과정도 왜곡해 왔다. 댓글 테러, 문자 폭탄, 18원 후원금과 같은 집단적 행동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반대하는 상대 정치인들을 위축시켰고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려 했다. 얼마나 도가 지나쳤으면 영국의 축구장 난동꾼인 훌리건, 모택동을 호위하던 홍위병이라는 비판까지 이어진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당원)’ 논쟁도 팬덤정치가 불러온 폐해다. 이재명 의원은 지난 보궐선거 때 소위 개딸, 양아들과 같은 지지 팬덤을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밝히며 이들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홍영표 의원 대자보 사건이 비판받자 민주당은 비호감 지지 활동은 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치팬덤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고, 팬덤정치는 이미 도를 넘고 있다. 정치인이 정치팬덤을 자기 정치에 이용하는 팬덤정치를 멈추지 않는 이상 정치팬덤의 맹목적인 극단성은 더 강화될 것이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정치인에게 희망을 걸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권력 쟁탈이 본질인 정치 세계에서 정치인은 언제든 정치팬덤을 자기 정치에 동원해 팬덤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해법은 한계가 분명한 정치인을 통해 내 삶을 바꿀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인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통해 내 삶을 개선하는 게 바른 정치 접근법이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건 좋으나 잘못할 땐 그게 누구든 비판해야 한다. 정치인은 아이돌이 아니고 내 삶을 개선하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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