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멈춰선 안 될 윤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
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바닷바람이 아직 매섭던 지난해 2월 말,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 어업지도선을 타고 나갔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며칠 앞두고 가덕신공항 예정지를 둘러보면서 ‘가덕신공항 특별법’ 처리에 힘을 싣는 현장 행보를 한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의 선거 중립의무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청와대를 담당하던 필자는 ‘풀 기자단’의 일원으로 서울에서부터 문 대통령을 동행취재했다.
변화의 바람 불러온 대통령 출근길 문답
메시지 무게 때문에 적잖은 리스크 요인
대통령은 물론 기자들에게도 고된 노동
그래도 주권자 권리 지킬 최소한의 장치
대통령의 공개 행사에는 순번제로 청와대 출입 기자 두 명 정도가 따라간다. 풀 기자단은 다른 기자들을 대신해서 현장을 취재하고 그 내용을 전체 기자단에 공유한다. 그런데 말이 동행취재이지 ‘주체적인’ 취재는 원천 차단돼 있다.
대통령 경호원들은 허락되지 않은 사람의 근거리 접근을 막았고, 심지어 방송 카메라에 필자가 잡힌다는 이유로 빨리 옆으로 빠지라는 핀잔까지 듣는 ‘짐짝’ 신세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자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출근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매일 문답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윤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Door Stepping)이라고 말한다. 도어 스테핑을 직역하면 ‘문 앞에서 걷고 있다’ 정도로 해석된다. 기자들이 특정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문 앞에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엄밀히 따지면 도어 스테핑의 주체는 윤 대통령이 아니라 기자들이다.
기자들은 그동안 도어 스테핑 대신 순우리말(?)인 ‘뻗치기’라는 은어를 사용했다. 특정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회의나 회동이 끝나기를 기약없이 기다리거나, 취재원을 잠시라도 만나기 위해 출퇴근길에 대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에 출근하는 통로가 정해져 있고, 시간도 비교적 일정하기 때문에 ‘뻗치기’라는 표현보다는 ‘도어 스테핑’이라는 용어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여론의 비판을 듣기라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주권자의 권리이고, 세금을 내는 데 따른 보상이다. 윤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은 그런 바람을 충족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세련된 답변을 하지 않더라도 국민들과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지, 국정에 대한 분노 또는 환호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소통’이 된다.
대통령이 매일 기자들 앞에 서면 정부 부처는 물론 공직사회 전체가 긴장하는 효과도 있다. 국무총리나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할 것 없이 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하기 힘들다. 대통령이 민심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데 어느 공직자가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은 적잖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장관이나 참모들이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입장을 내놓으면 마지막에 대통령이 나서서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 메시지 하나하나가 최종 명령 또는 최후의 의사결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현장에는 방송카메라 기자 3~4명, 사진기자 5~6명, 취재기자 20여 명가량이 자리를 잡는다. 정식 기자회견의 무게에 비교해도 전혀 가볍지 않다.
지난 10일 ‘검찰 편중 인사’ 논란에 윤 대통령은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고 말했다. 이틀 뒤에는 “필요하다면 또 (검찰 출신 인사를) 하겠다”고 오기를 부렸다. 두 발언이 모두 도어 스테핑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대통령 참모들은 크게 걱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에서도 도어 스테핑 횟수를 줄이거나,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한번 줄어들면 다시 늘리기 힘들고, 임기 후반기로 가면 유야무야 없어질 수도 있다.
덧붙이자면, 기자들도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이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대통령 출근시간은 정해져있지만 기자들은 그보다 훨씬 일찍 기자실에 도착해 뭘 물어볼지 구상해야 한다. 질문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다른 기자들보다 일찍 나가서 대기해야 한다. 고된 노동이 매일 반복된다.
풀 기자를 정해서 취재 내용을 공유하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취재의 목적과 관심사가 다른 수많은 매체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기자들 사이의 취재 욕심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다.
그래도 기자들은 매일 대통령의 출근길을 지킬 것이다. 윤 대통령도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도어 스테핑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까지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