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수’ 1호 공약 전수 학력평가, 시행까진 ‘산 넘어 산’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9일 부산 부산진구 동성고에서 3학년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8일 공식 출범한 부산시교육감직 인수위원회가 하윤수 당선인의 1호 주문으로 ‘전수 학력평가 시행방안’을 마련하라고 부산시교육청에 지시했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한 전국 동시 시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부산을 포함한 일부 지역만 실시하더라도 경쟁교육에 대한 비판적 여론 등 넘어야 할 고비가 많아 실제 도입까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13일 부산시교육청과 교육감직 인수위 등에 따르면 최근 시교육청의 첫 인수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하 당선인은 핵심 공약인 ‘전수 학력평가’ 시행과 ‘부산학력평가연구원’ 설립 등에 관한 계획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시행방안 마련 지시에 난제 많아
정부 나서지 않으면 전국 시행 불가
경기도 등 타 지역, 공동시행 소극적
경쟁교육·사교육 확산 우려 많아
9월 학업평가서 부산만 응시가 대안
교육계 “충분한 준비 기간 둬야”
하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 8년간 김석준 교육감의 정책을 ‘깜깜이 교육’으로 규정하고 전수 학력평가를 비롯한 ‘학력신장’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 당선인은 후보 시절 “(전국 단위 평가가 어렵다면)대구와 경북 등 여건이 되는 지역과 함께하거나, 부산만이라도 전체 학력평가를 시행하겠다”며 줄곧 강한 의지를 내비쳐 왔다. 인수위에서도 당장 전면 시행이 어려울 경우 올 하반기부터 보수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과 연합해 공동 시행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제 출제부터 협의해야 할 사안이 많고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등 상당수 보수 성향 당선인들이 전국 학력평가 시행에 적극적인 입장은 아니어서 공동 시행이 성사될지 미지수다.
교육계에선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려면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가수준 평가처럼 전년도와 비교가 가능하려면 난이도를 조절하는 ‘동등화’ 작업 등 관련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수준에서 시행 중인 학력평가는 크게 기초학력 진단평가(초3~고1)와 학업성취도 평가(중3·고2)가 있다. 기초학력 진단평가는 읽기·쓰기·셈하기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기준의 60%에 이르면 ‘도달’, 이르지 못하면 ‘미도달’로만 표기된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대상 학생의 3%만 표집시행을 하며, 우수(4수준)부터 미달(1수준)까지 4단계 결과만 공개할 뿐 학교와 학생 등수는 비공개다. 점수와 등수가 공개되는 시험은 고1·2학년 대상인 3·6·9·11월 전국연합학력평가와 고3이 치는 3·4·7·10월 전국연합학력평가, 6·9월 수능 모의평가 등이 있다.
한 지역 진학전문가는 “부산지역엔 학력평가와 관련해 제대로 연구를 진행할 전문가가 거의 없다”며 “전문가들이 모여 상당 기간 논의를 해야 구체화시킬 수 있고, 처음엔 시행착오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에서는 2000년대 중반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자체 전수 평가를 실시하다 2008년 정부 차원의 학력평가가 도입되면서 중단된 바 있다.
경쟁교육과 사교육 확산을 우려하는 교원단체와 학부모를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전교조 측은 이번 인수위 참여를 결정하며 당선인의 우려 공약 중 하나로 전수 학력평가를 꼽았다. 전교조 부산지부 임정택 지부장은 “일제고사를 치러본 교사들은 시험이 오로지 목적이 돼버리면서 교육의 본질이 어떻게 훼손되는지 경험을 통해 다 알고 있다”며 “기초학력 강화가 일제고사를 통해 학생들 성적이 드러나게끔 하는 방식은 절대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학력 수준을 알고 싶어하는 학부모 여론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당선인과 인수위가 두 입장을 적절히 만족시킬 묘수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만약, 올 하반기부터 전수 평가를 추진한다면, 9월에 있을 학업성취도 평가(중3·고2 대상, 3% 표집시행)를 부산지역만 전체 학생이 다 응시하는 방법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교 서열화와 지역간 경쟁 등 부작용 때문에 2017년도부터 ‘표집시행’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무작위로 지정한 특정 학교의 특정 반 학생들만 컴퓨터를 이용해 응시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이와 관련, 13일 교육부는 올 9월부터 희망하는 학교가 학업성취도 평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평가 대상도 연차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혀 부산시교육청 방침에 따라 참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올해 응시 대상에 초6을 추가하고, 내년엔 초5와 고1, 2024년엔 초3~고2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세 학년만 시험을 치고, 내년부터 대상 학년을 확대해나가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부산지역만 전체 학생들이 다 응시할 경우 3%만 표집시행한 타 집단과의 결과를 놓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