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소모전에 ‘나토 책임론’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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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전쟁 관련 선악 논리 경계해야”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접어들면서,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도 여전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 내에서는 '종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를 향해 “푸틴의 복사(服事) 노릇을 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지 말라”고 꾸짖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크라 전쟁에서의 ‘나토 책임론’을 시사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번째다.

14일(현지시간) 발행된 예수회 정기 간행물 ‘라치빌타카톨리카’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달 19일 바티칸에서 라치빌타카톨리카 편집인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한 국가 지도자로부터 전쟁 발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말을 들었다고 공개했다. 교황은 “전쟁이 시작되기 몇 달 전 한 국가원수를 만났다.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며 “그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 뒤 내게 ‘나토의 움직임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그들(나토)이 러시아 문 앞에서 짖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가 제국이라는 점과 어떠한 외국 세력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며 ‘현 상황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이 국가원수가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교황은 또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 체첸·시리아 용병에 의해 자행되는 잔인함과 흉포함을 비난하면서도 흑백 논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교황은 “여기에 형이상학적인 선과 악은 없다. 서로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는 요소를 가진 글로벌 차원의 무언가가 등장한 것”이라면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측의)괴물 같은 모습만 보고 이 전쟁의 배후에서 펼쳐지는 전체 장면을 보지 못하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아마도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도발됐거나 혹은 방지되지 않았다”는 표현도 썼다. 로이터· AFP 통신 등 일부 외신은 나토의 동진이 전쟁을 유발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토’의 동진 정책이 도마에 오르면서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이날 스웨덴을 방문해 오는 2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 전까지 가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이상 논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들 두 국가는 지난달 전격 나토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며 러시아 압박에 동참했지만 터키가 양국 내 쿠르드노동자당 활동을 문제삼아 제동을 걸고 나섰고, 이 과정에서 나토는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유럽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균열이 일고 있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가 이날 발표한 유럽 주요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35%는 종전을 서둘러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22%는 러시아에 대한 응징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종전을 우선시하는 비율은 이탈리아(52%), 독일(49%), 프랑스(41%) 등에서 높았다. 대응책을 둘러싼 이 같은 분열상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럽인들의 피로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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