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위치/조말선(1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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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의 양배추는 크고 먼 곳의 양배추는 점점 작아져서

실감이 났다



무려 점으로 추측되는 거리가 되었을 때 탄성이 새어나왔다



멀어지는 명아주가 풀이 죽고 있었다 멀어지는 라벤더가

풀이 죽고 있었다 멀어지는 샐러리가 풀이 죽고 있었다

(중략)

내가 풀이 죽어가는 것을 네가 바라봐주면 아름다울 것이다

무려 점으로 추측되는 거리가 되었을 때 네 탄성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이다



비는 점을 자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소리쳐야 할 이름이 길어져서 목이 쉬게 될 것이다



-시집 (2022) 중에서


모더니즘 시의 선두에 서서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시인이 십 년 만에 새 시집을 펴냈다. 기존의 시들에 반하여 독립된 시가 있고 독립하려는 시가 있다면 시인의 시들은 이제 원숙하면서도 독립된 시의 위치를 가리킨다. 산야에 풀들이 쳐들어오는 초여름을 맞아 시인은 텃밭이거나 농장에서 각각의 거리와 위치를 가진 양배추와 명아주와 샐러리 등속을 풀(식물)과 풀(기운)의 대비를 통해 탄생과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얘기한다. 어떤 쓸쓸함이 묻어났는데 시인은 곧바로 ‘비는 점을 자라게’ 할 수 있고 그러면 ‘소리쳐야 할 이름이 길어’진다는 놀라운 시적 도주를 이뤄낸다. 좋은 시인은 지방이 아니라 어느 위치(지역)에 있어도 좋은 시를 쓴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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