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 ‘임신 중지권’ 폐기 정치권·시민사회 찬반 논쟁 격화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권 보장 판례 폐기 결정 다음 날인 25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임신중지권 옹호론자들이 ‘대법원(scotus)은 수치다’고 적힌 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미국 연방대법원이 50년가량 유지돼오던 임신중지권(낙태권) 보장 판례를 폐기하자, 미 전역이 들끓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 공방도 격화되면서 미국 사회가 빠르게 둘로 쪼개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CNN방송, 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임신 후 약 24주까지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지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미국 대법원은 이날 판결과 관련 “헌법은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며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런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서 “이에 따라 이 판결은 기각돼야 한다”고 밝혔다.
‘로 대 웨이드 판결’ 50년 만에 폐기
중지권 인정 여부 주 정부로 이관
민주당, 11월 중간선거 쟁점 예고
트럼프 “헌법에 따른 당연 조치”
미 전역서 항의·찬성 시위 몸살
교황청은 성명 내고 판결 환영
이에 따라 임신중지권 인정 여부는 각 주 정부와 의회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판결 직후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고 나섰고, 임신중지 옹호론자들은 미국의 역사를 후퇴시켰다고 주장하며 임신중지권 보장을 위해 맞서겠다고 외쳤다. 이날 판결 직후 미국 곳곳에서는 시위가 들끓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시위가 격해지면서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도 했다.
정치권의 공방도 거셌다.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민주당은 연방 차원의 입법을 위해 힘을 실어달라며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삼을 것임을 예고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주법으로 임신중지가 불법이었던 1800년대로 돌아간 것이다.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 놓았다”며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의회가 연방 차원의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 전에 했어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환영했다. 일부 주는 즉시 임신중지 금지 조처를 단행했다. 켄터키, 루이지애나, 사우스다코타 주는 대법원의 판결과 동시에 자동으로 임신중지를 불법화하는 ‘트리거 조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글로벌 논쟁’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임신중지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썼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트위터에 “미국서 전해진 뉴스는 끔찍하다”고 충격을 표시했으며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도 성명을 내고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기본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반면 교황청은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을 크게 반겼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