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실명 부친, 유공자 인정을”… 10여 년 ‘외로운 싸움’
한국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한 고 정용태 씨의 생전 모습. 정홍규 씨 제공매년 6월 25일이 돌아올 때마다 정홍규(59) 씨는 착잡한 마음이다. 정 씨는 10여 년째 아버지의 상이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정 씨의 아버지 고 정용태(1925~1989) 씨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다가 참전 1년 만에 안구 부상을 입고 명예 제대했다.
정 씨의 아버지는 1950년 경북 영천시 신녕면 일대에서 신녕전투에 참전했다. 신녕전투는 국군 제6사단이 1950년 9월 낙동강방어선 신녕에서 북한군 제8사단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다. 그는 참전 1년여 만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고 ‘우안구 파편창’을 진단받아 명예제대했다. 정 씨는 아버지가 제대 이후 왼쪽 눈까지 시력이 점차 나빠져 30여 년을 실명 상태와 다름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1950년 영천 신녕전투 참전
시력 잃고 제대한 고 정용태 씨
병상일지 등 근거 기록 없어
보훈처, 두 차례 심의 모두 기각
지난해 소송 제기한 유족
“개인이 행적 입증 힘들어” 한숨
생전 고생한 다른 상이군인들도 많다며 상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극구 말리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유점복(92) 씨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아버지의 상이 국가유공자 등록에 나섰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모으던 자료를 넘겨받아 이제는 정 씨가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홀로 국가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 씨는 2010년부터 아버지의 상이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해 국가보훈처를 10여 차례 찾았다. 그 과정에서 2017년과 2020년 두 번에 걸쳐 상이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심의 결과 두 번 모두 신청을 기각했다. 자료 부족으로 부상의 등급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보훈병원이 아버지의 상이 등급을 인정한 만큼 나라도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7년 첫 신청을 하면서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에 그해 보훈병원이 재심사한 신체검사 결과를 제출했다. 보훈병원은 당시 아버지의 생전 신체검사 결과를 토대로 ‘우안구 파편창’ 진단과 그에 따른 6급 2항 1113호 상이 등급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보훈처는 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측은 아버지의 병상 진단은 인정하지만, 병상일지 등 해당 진단을 뒷받침할 수 없는 근거가 없다며 등급기준 미달을 결정했다. 정 씨에 따르면 보훈병원의 판정 이외 현재로서는 개인이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기록은 없다. 육군에도 요청해보았으나 병상일지 등 남아있는 기록은 없었다. 이후 2020년 두 번째 신청 결과도 같았다. 정 씨는 지난해 보훈처를 상대로 등급기준미달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현재도 소송은 진행 중이다.
정 씨는 “보훈병원에서 전쟁으로 인한 부상과 그에 따른 상이 등급을 판정했고 실제로 평생 부상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국가가 상이 군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우와 존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국가가 아니라 일개 개인이 70년 넘은 과거의 행적을 찾아 전쟁 중 부상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 유점복 씨도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유 씨는 “남편은 제대 이후 평생 눈에서 진물이 나오고 앞을 못봤다. 평생 고생한 시간을 국가가 유공자 인정으로 보상해주지 못한다면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