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치료 모두 어려운 ‘최악의 암’ 췌장암, 그래도 생존율은 올라간다
해운대백병원
췌장암으로 담도가 막히면 황달이 생겨 수술이 불가능해진다. 이때는 막힌 담도를 개통하기 위해 ERCP(내시경 역행 담췌관 조영술) 시술을 하게 된다. 해운대백병원 소화기내과 최준혁 교수가 ERCP 시술을 하고 있는 모습. 아래 작은 사진은 췌장. 해운대백병원 제공몸속 깊은 곳에서 병이 생기면 발견하는 게 쉽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장기가 췌장이다. 명치와 배꼽 사이의 윗배에 위치하고 위의 후방에 숨어 있는 장기가 췌장이다. 그래서 췌장암은 발견이 어렵다.
흡연·음주·당뇨·가족력 등 원인 지목
지속적 복통과 소화 불량·황달 수반
최근 항암제·치료 기법 꾸준히 발달
5년 생존율 14% 육박… 포기 말아야
■꼭꼭 숨어 있는 암, 예후도 안 좋다
실제로 수술이 가능한 초기에 발견되는 췌장암은 15~20%에 불과하다. 초기에는 아예 증상이 없거나 증상이 있더라도 위염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흔한 질환과 감별이 어렵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악화된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또 초기에 수술을 받았더라도 다른 암에 비하여 재발을 잘 한다. 일반적으로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알려진 폐암이나 담낭 및 기타 담도암에 비해서도 5년 생존율이 훨씬 낮다. 한마디로 고약한 성질을 가진 암이다.
췌장암의 특징 중에 하나는 진행과 전이가 빠르다는 점이다.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암이 불과 2~3개월 만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 췌장 주변에는 대동맥, 정맥, 간문맥과 같은 주요 혈관이 모여 있어 혈관을 타고 다른 장기로 원격 전이가 잘 된다.
해운대백병원 소화기내과 최준혁 교수는 “췌장암은 발견하기도 어렵고, 발병하면 거의 낫기 힘든 병으로 알려져 공포감이 아주 높다. 아직까지 확실한 조기 진단법이 없고 완치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낮아 췌장암 치료법에 대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0대 이상 발병률 높아, 고령층 특히 조심해야
췌장암은 췌장을 구성하는 여러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을 말한다. 90% 이상은 췌장의 췌관 세포에서 발생하는 췌관선암종이다.
2021년 발표된 국가암정보센터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췌장암은 2019년 기준 전체 암 발생률 중 8위다. 5년 상대생존율 추이에서 췌장암의 생존율은 주요 암 가운데 최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 성적이 더디지만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2015년 이후 다양한 치료 약제 사용, 수술기법의 발달로 인해 이전의 10% 이하에서 13.9% 정도로 생존율이 상승했다.
문제는 췌장암의 발생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암정보센터 통계에 의하면 2019년 기준으로 새로 췌장암으로 진단된 환자는 총 8099명으로 이전보다 2% 증가했다. 60대와 70대가 각각 30% 정도이며 80세 이상은 16.6% 수준이다. 환자 10명 중 8명 가량이 60대 이상이어서 고령층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암이다.
■복통 소화불량 황달 등이 주요 증상
췌장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복통과 소화불량이다. 췌장암 환자의 80% 이상에서 윗배의 지속적인 통증이 나타난다. 위의 후방에 위치한 췌장의 특성상 등이나 허리 통증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체중 감소 또한 췌장암의 흔한 증상 중 하나다. 일부러 감량을 하지 않고도 수개월 내 본인 체중의 10%정도가 감소한다면 이는 췌장암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이므로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황달도 췌장암에서 비교적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다. 췌장암의 60~70%는 췌장의 머리 부분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췌장의 머리 부분으로 담즙이 흘러내려오는 담도가 통과하는데, 췌장암으로 인해 담도가 막히게 되면 황달이 발생한다. 소변 색깔이 짙어지는 증상이 가장 먼저 발생하고, 심해지면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되며 가려움증이 동반된다.
새로 발생하거나 갑자기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도 췌장암의 중요한 증상이다. 췌장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관이므로 췌장암이 발생하면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50세 이상에서 새로 발병한 당뇨병 환자에서 3년 이내 췌장암이 진단될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8배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췌장암의 위험인자로는 흡연, 과도한 음주, 새로 발병한 당뇨병 등이다. 가족 중에 췌장암 환자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술로 인한 만성 췌장염도 췌장암의 원인이다. 췌장에 계속해서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켜 일반인보다 췌장암 발생률을 높이는 것이다.
■초음파내시경과 ERCP로 진단
췌장암의 진단에는 종양표지자(CA19-9), 다양한 영상 검사가 활용된다. CA19-9라는 종양표지자는 건강검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고, 실제로 췌장암 환자에서 재발이나 예후를 예측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이상 소견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스크리닝 검사로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복부 초음파는 개원가에서 가장 쉽게 실시되는 검사지만 해부학적 위치상 정확한 진단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초음파 상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돼 췌장암이 의심되면 반드시 CT, MRI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초음파내시경은 초음파 기기가 부착된 내시경을 이용하여 췌장을 더욱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위내시경 검사 방법과 거의 동일하다. 내시경 장비 끝에 초음파라는 기계가 달려 위 또는 십이지장까지 기계를 넣어 췌장을 관찰한다. 필요할 경우 췌장에 대한 조직 검사도 시행할 수 있으므로 진단이 애매하거나 항암 치료를 위한 확진이 필요한 경우 사용되는 검사다.
■수술받으면 악화된다며 치료 포기 많아
‘췌장암은 수술을 받으면 더 빨리 나빠진다’는 잘못된 인식이 아직 남아 있다. 췌장암이 실제로는 전이됐는데 전이 상태를 못 보고 수술을 진행하면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하면 그럴 일은 없다.
수술은 췌장암 완치를 위한 거의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하지만 진단 당시에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는 20% 이하이며, 그마저도 황달 등이 생기면 바로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황달 치료를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흔히 담도, 췌장내시경으로 불리는 ERCP(내시경 역행 담췌관 조영술)이다. ERCP 시술로 막힌 담도가 개통되면 환자의 간·황달 수치 등이 좋아져서 외과적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췌장암은 항암 치료에 반응이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 이전에는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사용되고 있는 항암 요법은 이전에 비해 효과가 많이 좋아졌다. 실제로 폴피리녹스 요법이나, 알부민 결합 파클리탁셀과 젬시타빈 약물의 병합 요법이 적용되면서 10% 미만이던 5년 생존율이 13.9%로 개선됐다.
또 수술전 항암치료도 널리 시도되고 있다. 췌장암이 주변의 혈관을 침범하여 바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에서 항암으로 종양의 크기를 줄여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생존율을 높여준다.
최 교수는 “당뇨병이나 가족력 등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에는 조기발견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설사 췌장암이 진단되더라도 이전에 비해 우수한 치료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