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북항에 월남 파병 기념 시설 추진… 시민 여론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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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에 파병됐던 청룡부대원들이 부산항으로 귀국하는 모습. 월남전 참전 군인들은 부산항에서 가족과 친지들을 뒤로하고 출항했다. 국가보훈처는 이를 기념하는 시설물을 부산 북항에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부산일보DB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군 장병 32만 4864명이 이름도 낯선 베트남으로 떠났다. 부산항 제 3부두는 파월군이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에 밟은 마지막 고국 땅이었다. 그중 5099명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북항은 이들에게 가족과 연인과의 끝 모를 이별이자 상봉의 장소였던 것이다.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가 이처럼 베트남전 참전 국군이 떠나고 돌아왔던 부산항 북항에 월남 파병을 기념하는 시설물을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관련 기사 21면

박민식 보훈처장 “설립 계획 중”
정부 부처서 의지 밝힌 건 처음
부산시 “공식 제안 땐 적극 검토”
형태 미정… 전문가 의견 수렴
일각선 “베트남 국민에겐 아픔”
정치권 “시민들 동의 우선돼야”

그동안 베트남전 참전 용사 단체가 요청한 적은 있었지만 정부 부처에서 구체적으로 이 같은 의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시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27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진행된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2만 명이 넘는 국군 장병이 가족을 떠나 베트남전에 뛰어들었다. 부산 시민은 물론 국민들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을 기념할 수 있는 시설을 북항에 건립하는 것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박 처장은 이어 “당시 파병 용사 평균 연령은 대략 20대 초반이었다”며 “이 시기는 각자의 인생에서만큼은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그때 다른 나라로 떠나 생사를 넘나드는 그런 절박한 시간을 거기에서 보낸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다만 기념 박물관이나 기념비 등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면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 단체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박 처장의 이 같은 구상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국가의 확실한 보상이 나라를 위한 국민의 자발적인 헌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결국 보훈이 곧 안보라는 것이다. 특히 박 처장이 베트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처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부친인 고 박순유 중령 또한 월남전에서 맹호부대 첩보부대를 지휘하다 1972년 6월 전사했기 때문이다.

앞서 2013년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는 “월남 참전 기념탑이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고 정작 월남 파병, 귀환의 거점이었던 부산에는 참전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 공간이 전무한 상태”라며 “참전 용사들이 가족과 애절한 작별을 하고 귀국 때 눈물 어린 재회를 한 이곳이 북항재개발로 사라지게 된 만큼 기념비적 조형 광장 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부산해양항만청과 부산항만공사 등에서 관련 예산 지원에 난색을 표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 부산시는 국가보훈처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공식적으로 제안 받은 바 없다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부산시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념할 수 있는 좋은 제안이 온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베트남 국민들에겐 아픔의 기억일 수 있는 전쟁을 기념하는 시설이 북항에 들어서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북항에 시민들의 휴식과 위락, 문화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북항 재개발의 목적이 공공성인 만큼 시민들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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