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 트레일러서 시신 46구가… ‘아메리칸 드림’의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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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남서부 외곽에서 경찰들이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된 대형 트레일러 근처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오려던 이주자 40여 명이 트레일러에서 무더기로 숨진 채 발견됐다.

2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시 남서부 외곽에 주차된 대형 트레일러 안에서 시신 46구가 발견됐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날 샌안토니오의 기온이 40도에 달하면서 트레일러에서 고온 속에 질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남서부 외곽
주차 대형 트레일러 안 무더기 참사
바깥 기온 40도 육박, 질식사 추정
멕시코발 밀입국 참사 중 최악 기록

사망자를 제외하고 어린이 4명을 포함한 16명은 온열질환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마르셀로 에브라드 멕시코 외무장관은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 중 2명이 과테말라인이라고 밝혔다. 다른 희생자들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찰스 후드 소방서장은 “살아 있는 이들은 몸이 만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고 탈수 상태였으며, 트레일러 내부에는 식수도, 에어컨 장치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윌리엄 맥매너스 경찰서장은 트레일러에 있던 이들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던 이주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샌안토니오는 멕시코와 맞닿은 텍사스주 남부에 있다. 론 니런버그 샌안토니오시장은 숨진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온 가족으로 보인다”며 “끔찍한 인간 비극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이번 사건이 최근 수년 이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이민자와 관련해 최악의 사망 사건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크리스 매그너스 관세국경보호청 위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냉담한 인간 밀수업자의 손에라도 그들의 목숨을 맡기려는 이민자들의 절박함을 말해준다"면서 "우리는 연방과 주, 지역 파트너와 협력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 조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텍사스주 TV 켄스5의 지역기자 맷 휴스턴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인신매매 사건이라면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맥매너스 경찰서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3명이 구금돼 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체포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렉 애벗 텍사스 공화당 주지사는 "이번 사건이 치명적인 국경 개방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하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탓했다. 반면 애벗의 상대로 출마한 민주당 베토 오루크 후보는 "인간 밀입국 조직을 해체하고, 합법적인 이민을 위한 확장된 길을 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은 미국에서 논쟁이 일고 있는 정치적 문제로, 5월에는 23만 9000명의 서류미비 불법이민자들이 멕시코에서 국경을 건너다 구금됐다. 이는 지난해 대비 30%가 늘어난 수치라고 NYT는 전했다. 특히 중미에서 빈곤과 폭력을 피해 많은 불법이민자들이 미국 국경을 넘으려 하고 있고, 이를 위해 밀수꾼들에게 막대한 현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은 하루 최소 1만 8000명이 밀입국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2017년에는 샌안토니오 월마트에 주차돼 있던 트럭에 갇혀있던 이주자 10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트럭 운전사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 2003년 같은 도시에서 찜통 같은 트럭에서 19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트레일러는 1990년대 초 미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새로운 밀입국 수단으로 부상했다고 AP는 설명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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