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7·4남북공동성명’ 50주년을 맞는 새 정부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다음 주면 최초의 남북 합의인 ‘7·4남북공동성명’ 발표 50주년을 맞게 된다. 성명 제1항에서 약속한 조국통일 3대 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또는 평화)’은 최근까지도 남북 합의문이 작성될 때 반드시 포함되는 통일 원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분단 이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북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60년대 말 무장 공비의 청와대 인근과 울진-삼척 침투 그리고 미국 선박 푸에블로호를 북한이 나포한 사건 등 한반도에서 언제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이 이어졌다.
분단 이후 남북 간 첫 공식 만남
남북합의문 통일 3원칙 등 의의
최근 남북은 물론 세계도 격변기
남북관계, 새 좌표 설정 모색 필요
당시 역사적 행보 의미 되살려야
그러나 1970년대 국제 정세는 점차 바뀌었다. 중국과 옛 소련 간 갈등이 지속하면서 미·중 수교의 바람이 불고,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협정 체결이 이뤄지는 등 격변의 흐름이 나타났다. 결국 남북관계에도 상호 방문을 통해 최초의 남북대화가 전개되고, 공동성명 발표가 이뤄졌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의 평양 방문과 북한의 박성철 제2 부수상의 서울 비밀 방문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밝혀진 바 있다.
물론 이러한 대화 국면은 1년여 만에 끝났다. 우리 측이 ‘6·23선언’으로 발표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북한이 ‘조국통일 5대 강령’을 발표하면서 반발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 간 첫 만남 자체로 의의가 크며 합의문의 통일 3원칙은 여전히 유효하고, 남북관계사에서 역사적인 행보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남북관계는 반세기를 거치면서 대화와 대립 국면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 사이에는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91년 9월에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김영삼 정부에선 1차 핵 위기로 대화가 중단되었지만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2차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과 북한의 2차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부닥쳤지만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미 관계와 함께 남북관계도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간 남북관계사를 보면 정부의 성향에 따라 정책 차이가 없지 않았지만 모든 정부가 필요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대북 정책은 내외적 요인의 복합 결과이기 때문에 정부의 성향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 세계는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미·중의 대립 속에 최근에는 러시아 변수가 급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최초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초청되어 참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태평양 전략은 5년 전에 이미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역내에 일본의 군사적 위상이 대단히 중요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전 지구적으로 국가 관계와 질서의 변화가 나타나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남북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북 정책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머지않은 미래와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아직 새 정부에 대해 북한이 매체를 통해 ‘공식 입장’을 표명하거나, 비난한 바는 없다. 아마도 새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통일부의 대통령실 업무 보고 등 첫 대북 메시지에 따라 북한의 대남 정책에도 상응하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당장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도발’로 인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그래왔듯이 항상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기 마련이다. 그 출구를 대비하고 국익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점에서도 반세기 동안 지켜온 ‘통일 3원칙’의 의미를 되새기는 50주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