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73. 부산미술의 시작점이 된 작가, 임응구 ‘정물(장미)’

부산미술의 시작점은 언제일까? 회화를 기준으로 본다면 부산미술의 시작을 일제강점기인 1928년 전후로 보는 경우가 많다. 부산으로 들어온 일본인 미술 교사들에 의해 미술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졸업 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거나 부산에서 미술 활동을 시작하는 미술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임응구(1907~1994)는 부산미술의 태동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로 꼽힌다. 1928년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정식으로 화단에 등단했다. 1929년부터 부산미술전람회 양화 부문에 출품, 부산일보사(일본인이 발행하던 부산일보)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단광회에 가입해 회원들과 공동창작 발표회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6회 입선, 특선, 조선총독부상 수상, 일본제국미술전에서 특선 및 백수상 수상, 문제전에서 총 12회 입선, 살롱상 수상 등 그의 초기 활동 경력은 화려했다.
부산 작가인 우신출이 1934년 부산일보 사옥에서 개최된 임응구의 개인전 관람을 계기로 문하생으로 들어가 다년간 서양화 공부를 했을 만큼 임응구는 인지도가 높았다.
작가는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에는 일본 여성과 결혼하면서 일본에 귀화했다. 그러나 귀화 이후 언제부터인가 활동이 미약해져, 남아있는 작품이나 자료가 적다. 임응구는 부산의 다른 작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나 후일 조명 받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가다.
임응구의 작품 소재인 인물, 자연 등의 표현은 캔버스에 일관된 유채 기법을 사용하는 고전주의 구상 화풍을 이루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작품 ‘정물’ 역시 전통적이고 고전주의적인 서양화 구상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색감은 꽃 그림인데도 화려하지 않고 원색이 절제되어 모노크롬의 느낌과 같은 중후함을 담고 있다. 배경과 테이블 등 주제 외의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꽃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는 당시 부산에서 교육자로 활동했던 일본 작가들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보인다. 특히 이 작품은 1930년 작으로 작가가 제자인 우신출에게 선물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