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노동정책, 경기침체의 안전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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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장마가 시작되었고 하늘도 마음도 무겁다. 긴 가뭄 끝 반가운 비 소식이니 마음이 무거운 건 날씨 탓이 아니다. 끝나지 않는 전쟁, 기후 위기, 언제 다시 도래할지 모르는 감염병의 시대에 연일 계속되는 물가 폭등과 경기침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위기를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고 한다. 지방정부의 고민 또한 깊을 것이다.

지금의 경기침체는 다른 때와 양상이 다르다. 한국은행이 20일에 발표한 ‘우리나라 고용의 질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월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고용의 질은 99.2로 100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고용의 질 지수는 계약 기간이 있는 상용직, 임시직, 일용직, 자영업자, 근로시간 비자발적 36시간 미만, 종사자 5인 미만 등의 조건에 해당하는 일자리를 취약 노동자로 분류하고 이들의 비중, 취약 노동자의 취약 정도를 반영해 산출한 지표다. 특히 여성과 고령층이 크게 타격 받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계층 고용의 질이 코로나 19 이전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팬데믹 취약 계층 노동자 더 큰 타격

기혼 여성의 고용률 큰 폭으로 하락

양육과 돌봄, 여성 노동의 선결 과제

부산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전국 꼴찌

시 심도 깊은 고민과 해결 노력 없어

‘살고 싶은 부산’ 여성 노동정책 우선


이는 팬데믹 시기 경기침체의 특성이기도 하다. 문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경기침체기에는 남성 고용이 더 큰 충격을 받는 경향이 있어 ‘맨세션(mancession)’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제조업, 건설업 등 남성 취업자 비중이 높은 산업이 경기 변화에 보다 민감하고, 남편이 일자리를 잃을 경우 기혼 여성이 대신 일자리를 구하는 행태가 많아지는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여성 고용이 남성보다 더 악화되는 현상인 ‘쉬세션(shecession)’이 여러 국가에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성 비중이 높은 대면 산업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고, 학교와 보육원이 문을 닫으면서 육아와 돌봄 비중도 커진 것이 그 원인이다. 실제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1년간 초등학생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의 고용률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양육과 돌봄은 여성 노동에 있어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문제로,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그 심각성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 청년 여성들은 임신,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으며, 돌봄 노동의 상당수가 취약한 노동인 상황에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돌봄 뉴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생, 고령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핵심 노동인구(25~54세)는 2020년 기준 45.3%로 OECD 38개국 중 두 번째로 낮은데 2047년에는 31.3%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2060년에는 26.9%까지 줄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20%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핵심 노동인구의 변화를 보면 OECD 국가들은 0.2%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는 0.5% 감소했고 고용률 역시 최하위권에 머물렀는데 첫 직장을 얻는 ‘입직’ 연령이 높은 우리나라의 교육·노동환경과 저조한 여성 고용률을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부산은 더 좋지 않은 상황이다. 부산 지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6%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였는데 임금 또한 낮다. 부산노동권익센터의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전국 여성 노동자 월평균 소득은 247만 원으로 남성(371만 원)에 비해 1.5배 낮은데, 부산의 경우 여성 노동자 월평균 소득은 195만 원으로 7대 특·광역시 중에 가장 낮다. 그뿐인가. 주 15시간에도 못 미치게 일하는 이른바 ‘초단시간 노동자’가 부산에서는 10만 명을 넘어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여성, 청년, 고령층이 주로 많은데 주휴수당은 물론 연차유급휴가, 퇴직금이 제외되는 등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의 영향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다가오는 경기침체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생존을 더욱 더 위협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부산시는 얼마나 심도 깊게 고민하고 반영하고 있는가. 최근 입법예고된 부산시의 행정조직 개편을 보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고민의 깊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행정부시장 소속 민생노동정책관이 사라지고 금융창업정책관이 신설되었으며 민생 노동 업무가 행정자치국 소속으로 재편되었다. 팬데믹과 경기침체 시기에 취약한 여성 노동은 여성가족국의 특화된 업무로 추진할 필요가 있음에도 이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에는, 무엇보다도 주거와 노동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전 생애에 걸쳐 여성들이 살고 싶은 부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여성 노동정책 강화가 필수적이다. 안전벨트를 보다 튼튼히 만들어 줄 그런 행정조직의 개편을, 그런 지방정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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