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66. 불자지? 일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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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첫 해외순방’ 나토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김건희 여사> <윤석열 대통령, 나토 순방 첫날 한·호주 정상회담> <尹대통령, 나토 순방 마지막 날…체코·캐나다·영국 ‘세일즈 외교’> <대통령실 “규범 연대 등 尹 나토 순방 목표 기대이상 달성”>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초청을 받아 스페인을 다녀오는 동안 나온 기사 제목들이다. 한데, 이 제목들은 우리 언론이 얼마나 말을, 특히 한자말을 되는대로 쓰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돈 아낀답시고 인력을 감축하고 교열(어문)기자를 줄인 후폭풍이 바로 말도 안 되는 이런 제목들인 것.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순방(巡訪): 나라나 도시 따위를 차례로 돌아가며 방문함.(순방 외교./거래처 순방….)

순례(巡禮)나 순찰(巡察), 순시(巡視)나 순행(巡行)에서 보듯이 저 ‘순(巡)’은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는 뜻. 해서, 당연히 순방도 여러 곳을 방문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스페인, 하고도 마드리드에서 한 발짝도 다른 곳에 가질 않았다. ‘해외 순방, 나토 순방’은 우리 언론들의 거짓말이었던 것.

<日 고노, 태국 이어 싱가포르 영자지에도 한국 비판 기고문>

내친김에 이 기사 제목에서 뭐가 어색한지도 찾아보자. 아마, 한자 세대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뜻일까, 싶어 할 말이 바로 ‘영자지’일 터. 이 말은 표준사전엔 실려 있지도 않다. 다만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에는 이렇게 나온다.

*영자지(英字紙): 영어로 간행되는 신문이나 잡지.

아니, 그러면, 르몽드는 불자지, 인민일보는 중자지나 한자지, 아사히신문은 일자지인가. <부산일보>는 국자지이고?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생각도 말도 바뀌게 마련이니, 저런 한자어투 옛말들도 이젠 좀 버렸으면 싶은데, 아직도 끌어안고 있는 게 바로 언론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보도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래 기사를 보자.

‘해양수산부는 20일 일본 고베에서 일본으로의 국산 다시마 수출 확대를 위한 ‘대(對)일 다시마 수출상담회’를 개최했다.’

한자(어투)를 못 버리면, 이처럼 ‘대일’로도 만만치 않아서 ‘대(對)일’처럼 써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쉬운 말로 순화하거나 어순을 바꾸면 한자(말) 없이도 ‘더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다. 즉 ‘대(對)일 다시마 수출상담회’는 ‘다시마 일본 수출 상담회’로 바꾸면 된다.(‘일본으로의 국산 다시마 수출 확대’도 ‘국산 다시마 일본 수출 확대’면 훨씬 더 우리말답다.) 쓸데없이 한자말을 고집하니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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