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와락/장정희(1965~ )
맛깔나게 비벼진 밥 한 끼가 눈물겹다 친구야! 미안해, 널 사랑하는 만큼 참기름을 듬뿍 넣어주고 싶은데 식당주인이 고추장 같은 눈물 흘릴까봐 눈치만 보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의 삶도 뜨거운 솥에서 뒹굴 날 많겠지만, 발효의 시간 거치다 보면 서로에게 숟가락이 될 날이 올 것 같아.
오늘은 무장을 풀고 네게 쏟아내지 못한 쑥스러운 말들을 쓱쓱 비벼 예쁜 너의 입에 넣어주고 싶어. 내 안에 돋은 보풀 다 털어내며 응원을 먹는 이 순간, 연신 무지개빛 폭죽이 터지고 있는 중이야.
- 시집 (2020) 중에서
무장이 풀리는 친구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함께 풀린다. 식당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 비빔밥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는 더욱 좋다. 만나서 마음과 말을 함께 고르며,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와야 하는 친구 사이는 곤란하다. 비빔밥에 ‘참기름을 듬뿍 넣어주고 싶은’ 친구는 서로에게 숟가락도 되고 젓가락도 되는 힘을 주고받는다. 별 시시한 농담에도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무지개빛 폭죽’이 입 속에서 터진다. 시인은 좋은 친구가 있나 보다. 나도 친구를 만나 그러고 싶다. 여름이라 그런지 열무김치에 강된장에 슥슥 비벼 한 그릇 먹으면 좀 살 것 같아질지도.
성윤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