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회의 직무유기는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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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언론 보도를 통해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한 판결로부터 시작된 찬반의 대치적 현장을 본다. 이를 두고 미국이 남북전쟁 전 분열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고, 심지어 영국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서조차 우려와 실망의 의견을 내고 있다.

그날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결정권을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내용이라 했던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번복했다.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임신중지를 사생활로 보장했던 선례를 49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지난달 24일 미국 연방대법원
임신중지 전면 금지 합헌 판결
국내외 우려·실망 여론 고조

우리 형법 낙태죄 처벌 규정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나
관련 법률 개정 작업은 외면

대부분의 의료 행위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행위인 반면 임신중지 행위는 한 생명의 종결을 가져 온다는 점에서 임신중지권에 관한 논쟁은 동서를 막론하고 계속되어 왔다.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한 헌법적 보호 대상이므로 임신중지 허용 여부는 물론 허용 범위 설정도 쉽지 않은 쟁점이기 때문이다.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임신중지는 대부분 허용하지만,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임신중지를 인정하는 범위는 각국의 현실에 따라 입법 내용이 다르다.

대륙법계의 대다수 나라는 기간방식과 사유방식을 병행하고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기 전의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임신중지를 처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은 임신 24주까지 의사 2명의 동의를 조건으로 포괄적 임신중지를 허용한다. 스위스는 10주까지, 독일·덴마크·이탈리아·스페인 등은 12주까지 여성의 선택에 따른 임신중지를 허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형사령 규정으로 임신중지 행위를 처벌했다. 정부 수립 후에도 ‘낙태죄’ 존폐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지만 낙태는 여전히 개인적 선택을 넘어선 사회적 범죄로 여겨져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존속되었다.

그러다가 1973년 예외적으로 인공 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제8조(현재 제14조)가 제정됐다.

전면적 임신중지 금지는 일부 조정되었지만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 보유 시기를 감안하는 기간방식은 고려되지 않았다.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전염성 질환의 경우,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인척 간 임신, 엄마의 건강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에 그쳤다.

이런 형법상 낙태죄 규정과 너무 제한적인 모자보건법상의 예외 사유에 대해 개정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불법 수술 등으로 인한 부작용과 원하지 않는 출산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더 커진 현실적 어려움은 국가적 과제가 됐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등 처벌규정에 대해 2020년 12월 31일을 효력 시한으로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정당한 목적을 지녔지만, 모자보건법상 예외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의 전면적·일률적 금지, 위반 시 형벌 부과로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하였다.

헌법불합치 의견은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 위하가 임신종결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고, 실제 처벌 사례도 매우 드문 현실에서 처벌 조항이 태아의 생명 보호에 실효적이지 못하다는 점, 낙태갈등 상황에 처한 여성의 불안전한 방법의 낙태 실행 현실, 모자보건법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는 점을 판단의 이유로 고려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규정에 대해 국회의 입법적 결정을 존중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를 기준으로 한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 보호의 수단과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실제 현실과 사회적 공감대를 감안하여 국회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1년 1월 1일 0시부로 낙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은 사라졌지만 아직 법률 개정작업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현재 ‘낙태는 불법은 아니되 합법도 아닌 상황’인 것이다.

입법권자인 국회의 직무유기 상황이다. 임신중지의 전면적 허용인지, 기간방식 적용인지, 사유방식을 병행하는지, 보험 적용 대상인지 등 국회가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넘쳐 난다. 대체 우리 국회는 뭘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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