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단짠단짠' 부산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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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부장

“부산은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박종우 사진가는 사진가에게 부산은 천국 같은 도시라고 했다. 바다, 산, 오래된 골목, 높은 빌딩 등이 어우러지고 지형적으로 레벨 차이가 커 입체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진가가 약 3년간 찍은 부산의 모습은 다양했다.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 같은 장면도 있었고, 부산에 살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부산분들은 원색 페인트를 쓰는데 용감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도시의 컬러풀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부산·동래야류 재조명한 전시·공연

지역 담아내는 새로운 예술적 시도

다대포 무대로 한 ‘1제곱미터의 우주’

새로운 문화예술 콘텐츠 가능성 엿봐


예술은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만든다. 예술가의 시선을 통한 ‘재발견’은 무용 무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의 ‘야류별곡’이 한 예이다. 동래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동래야류를 무용화한 이 작품은 가면극을 무용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반과장 오양반(다섯 양반)을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구현하는 등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을 보며 관객은 ‘동래야류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부산시립무용단의 ‘부산, 40계단’이나 윤여숙무용단의 타임슬립무용극도 부산이나 부산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무대였다.

지역을 담아내고 지역을 읽어내는 예술적 시도 중에서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실험실 씨’가 6월 초에 진행한 ‘1제곱미터의 우주’이다. 실험실 씨는 부산의 생활사와 자연을 예술창작으로 표현하고 기획하는 단체이다. 아트 큐레이터와 숲 큐레이터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예술가·연구자와 협업해 지역의 장소를 문화예술로 기록해왔다. 2019년부터 구봉산, 수정산, 영도 절영해안산책로에서 장소 특정적 전시를 선보여 온 이들은 올해 다대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문헌조사, 현장답사, 지역민 구술 채집, 주제 스터디, 생태·지역 관찰 등의 과정을 거쳐 예술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 속에 전시될 작품을 준비했다. 답사하면서 발견한 생활폐기물에 관심을 둔 작가는 어업용 폐스티로폼에 1제곱미터 안에서 주운 바다 유리 조각 183개를 붙여 다대포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알을 만들었다. 작가가 가마에 구운 석고 돌에 숲에서 나는 소리를 기록하거나,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바라보며 트램펄린을 뛰어보는 등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작품도 있었다.

관객은 몰운대 숲을 거닐며 소태나무, 때죽나무, 산뽕나무 등 식물 이야기와 다대포 파래 양식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가상의 파래 양식장 사진을 바다 위에 비춰보고, 파래 양식법을 알려주는 어민들의 구술문을 찰진 부산 사투리로 읽어 보기도 한다. 다대포 토박이의 개인 앨범에서 나온 다대포 목선 사진을 본 관객은 어린 시절 목선을 타다 바다에 빠진 기억을 떠올렸다. 다대포의 기억들이 예술을 통해 공유되는 순간이었다. 다대포에서 태어난 주민은 ‘우리 동네가 알려지는 기회’가 반갑고, 다대포 바깥의 사람은 ‘다대포의 진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실험실 씨의 전시는 꽤 입소문이 나서 전시 관람 예약도 빨리 마감된다. 일부러 서울에서 찾아왔다는 한 관객은 “지역사회 리서치를 오래 하고, 자연물을 이용해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지역에 깊게 들어가는 시간을 제공해줘서 좋았다”고 했다. 부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담아내는 예술이 가진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원도 중요하다. 기존의 문화예술 지원 체계에서는 리서치 같은 항목은 비용 산정이 어려워 기획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올해 ‘1제곱미터의 우주’는 부산문화재단 메세나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부산은행의 지원을 받았다. 지역의 숨은 매력을 보여주는 문화예술콘텐츠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1제곱미터의 우주’에는 ‘파래 떡: 바다와 나는 나누어 먹는다’라는 작품이 있다. 한때 유명했던 다대포 멸치처럼 다대포 파래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다대떡집 사장님이 만든 진짜 ‘파래 떡’이 시루에 담겨 바닷가에 놓여 있었다. 파래 떡을 한 움큼 손으로 떼 일부는 고수레로 시루 옆에 놓아두고, 남은 떡은 입에 넣었다. 단맛이 느껴진다. 뒤이어 파래가 씹히며 살짝 짠맛이 올라온다. ‘단짠단짠’ 달고 짠 두 재료가 어우러져 감칠맛이 느껴졌다. 그렇게 예술로 새롭게 맛본 부산은 맛있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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