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몰이는 반인륜적 범죄” 사정 칼날 ‘문 정부’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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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6일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각각 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검에 고발했다. 지난해 2월 당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통합방위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를 향한 사정의 칼날을 꺼내 들었다. 국가정보원을 통해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을 국가정보원법(직권남용죄) 위반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것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2020년 9월)’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2019년 11월)’을 고리로 박 전 원장은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를, 서 전 원장은 합동 조사를 강제로 조기에 종료시킨 혐의를 받는다. 수사가 두 전직 국정원장을 넘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윗선까지 겨눌 경우 정치적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7일 “(국정원 고발에)입장이 따로 있지 않다. 저희도 국정원에서 보도자료를 낸 것을 보고 내용을 인지했다”며 사전 교감설에 선을 그으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고발 관련)두 사건을 주목하는 이유는 반인권·반인륜적 국가범죄가 있었다면, 다시 말해 공무원 피격을 두고 국가가 ‘자진월북’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면, 그리고 북한 입장을 먼저 고려해 귀순 어민의 인권을 침해했다면 중대한 국가범죄란 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 고발 이후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한다”며 사실상 신속한 검찰 수사를 주문했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포함
국정원, 박지원·서훈 전 원장 고발
중앙지검, 하루 만에 사건 배당
박 전 원장 “정치 보복” 강력 반발
감사원도 당시 해경 지휘부 조사 착수

여권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정보기관이 정치 공방이 진행되는 사건과 관련해 전직 원장들을 고발한 만큼 국정원이 ‘자체 조사’에서 최소한의 혐의를 소명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정원은 고 이대준 씨의 월북 의사를 판단할 수 있는 첩보를 토대로 국정원 직원이 생산한 자료를 박 전 원장이 삭제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 전 원장에 대해서는 통상 보름 또는 1개월 이상 걸리는 탈북민 합동 조사를 단 3~4일 만에 끝낸 배경을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 고발 하루 만인 7일 사건 이첩부터 배당까지 신속하게 진행했다. 박 전 원장 사건은 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 서 전 원장은 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검사)가 맡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해수부 공무원에 대한 ‘월북몰이’의 본질은 권력에 의한 진실의 은폐”라며 “해수부 공무원 월북몰이는 종북공정”이라고 검찰 수사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원도 이대준 씨의 자진 월북 판단을 내렸던 당시 해경 지휘 라인에 있던 해경 간부들을 7일 자로 일괄 대기 발령하며 임의 조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아 디지털 포렌식을 위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복제 작업을 개시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검찰의 사건 수사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진행된 일부 감사에 대한 내부 감찰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은 현재 공공기관감사국 A 과장 등 감사관 5명을 직위해제 조치하고, 지난해 1월부터 진행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감사 때 '봐주기 감사'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내부 감찰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를 지휘하다 좌천된 유병호 사무총장이었는데 감사원은 A 과장을 통해 유 국장을 건너뛰고 감사를 종결한 의심을 사고 있다.

야권에선 '윤석열 사단'이 국정원과 검찰 조직을 정리한 뒤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 등에 주목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 정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 "어이가 없다. 드디어 국정원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이라며 "직전 원장을 고발할 때는 부인할 수 없는 혐의를 가지고 해야지, 원장이 부인할 정도의 사안을 가지고 고발하는 건 명백한 정치 행위"라고 비판했다.

당사자인 박 전 원장은 "국정원이 받은 첩보를 삭제한다고 원 생산처 첩보가 삭제되느냐"고 반문하면서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첩보는 군 당국 등에서 생산한 것을 국정원이 공유받았을 뿐이어서 고의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미국에 체류 중인 서 전 원장은 이날 오후까지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민주당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태스크포스(TF)도 박 전 원장 해명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 TF는 이날 국방부 현장 방문 회의를 연 뒤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이 박 전 원장을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고발한 건이 MIMS(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 정보 삭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도 주장했다.

TF 단장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MIMS 기밀정보 무단 삭제를 세부적으로 확인한 결과 정보 원본은 삭제된 것이 하나도 없다"며 "국정원에서 MIMS 관련 정보를 삭제해서 고소·고발 건이 이뤄지는데, 그것은 국정원에서 삭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해양경찰과 국방부가 이 씨의 월북 판단을 번복하는 과정이 오히려 현재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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