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베 피격 사망, 한·일 관계 돌파구 마련 급하다
9일 일본 도쿄도 시부야 구 소재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자택 앞에 조화가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거리 유세를 하던 도중 전직 자위대원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먼저 전직 최고 국가 지도자의 사망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을 일본 국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는 어머니가 심취한 한 종교단체에 아베 전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민주주의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 같은 테러는 어떤 이유에서든 있어서는 안 된다. 총기 범죄율이 낮은 일본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도 매우 충격적이다.
미·중 등 세계 정상 신속한 움직임
적극적인 조문외교로 경색 뚫어야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을 두고 우리의 속내는 다소 복잡한 게 사실이다. 그는 8년 9개월간 재임한 일본 최장수 총리였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아베노믹스’로 실물경제를 부흥시킨 우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총리 시절 과거사 문제로 한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과 마찰을 빚었다. 강제 동원 조선인 피해자에 대한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도 있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방위비 증액과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등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을 주도해 온 당사자였다.
이번 사건으로 일본의 우경화 색채가 더 짙어져 동북아시아 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겨우 해빙으로 방향을 튼 한·일 관계도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본격적으로 일본 측과 만나려고 하던 참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게 사실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실용적인 중국의 외교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베 전 총리는 대만 지지 등 대중국 강경 발언으로 중국 정부 ‘요주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고인의 부인에게 조전을 보내는 등 가장 높은 수준의 조의를 표명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 장관은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장에서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일본 기자들에게 다가와 일본어로 취재에 응하는 외교적 노련함을 보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아베 전 총리의 빈소가 마련된 미국 워싱턴DC의 주미 일본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기시다 일본 총리에게 전화해 애도를 전했다. 세계 각국 정상 및 정부 당국자들이 일제히 일본을 향해 위로를 쏟아낼 때 한국 정부는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이었다. 한·일 관계가 안 좋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사건에 대해서 적극 규탄하는 목소리를 신속하게 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한일본대사관이 마련할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하고, 조문 사절단도 파견한다니 한 발 늦었지만 잘하는 일이다. 지금은 적극적인 ‘조문 외교’로 한·일 관계 돌파구를 마련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