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베 3대와 부관(釜關)
문화부장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1954~2022) 전 일본 총리의 지역구는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항구도시 시모노세키(下關). 조선시대에는 부산(釜山)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의 배가 도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부산의 자매도시이기도 한 시모노세키는 근현대 들어서도 한국과 질긴 인연을 이어 간다.
1970년 6월 16일 오후 3시 시모노세키항에서 40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부산으로 출항한다. 이 뱃길은 부산과 시모노세키의 한문을 한 글자씩 따 ‘부관(釜關)훼리’ 항로라고 불린다. 당시, 이 항로 운항이 재개된 것은 25년 만이었다. 1905년 부관연락선으로 시작한 부관훼리 운항은 1945년 중단됐다.
이 여객선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부관훼리 재취항 기념식에 참석하는 일본 대표단이 다수 탑승했다. 향후 한·일 관계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 2명도 함께 이 배를 타고 16일 오후 10시 부산에 도착했다. 야마구치현에 기반을 둔 기시 노부스케(1896~1987)와 아베 신타로(1924~1991)였다.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전쟁 A급 전쟁 범죄자. 하지만 총리 등을 역임하며 전후 일본 체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중의원, 관방장관, 외무대신 등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는 친한파 정치인이었다. 지역구인 시모노세키에 많이 거주한 재일 한국인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아베 신타로의 부친 아베 간(1894~1946)은 기시 노부스케의 반대편에 선 정치인. 군국주의를 강력 비판하는 등 반전 평화주의를 실천했다는 평가다. 시모노세키에서 출마해 2선 중의원을 지냈지만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아베 신타로는 1951년 기시 노부스케의 딸 기시 요코와 결혼한다. 3년 뒤 이 부부 사이에 아베 전 총리가 태어난다. 아베 전 총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치 성향이 아니라 외할아버지의 극우 성향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이어진 정치 기조는 그의 사후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선거에 압승한 자민당이 현재도 헌법 개정 등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는 극우 정치인의 삶을 살다 간 아베 전 총리. 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지역구만이 아니라 정치 기풍까지 함께 계승했더라면, 아베 간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베 신타로 부자가 더 많이 소통했더라면 현재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 정세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나간 역사엔 ‘가정’이 무의미하다지만 생각할수록 아쉽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busan.com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