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굽히고 나선 중동 순방… 초조함만 드러낸 바이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홍해 연안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관심을 모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이 큰 성과 없이 ‘빈 손’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이번 순방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초조한 속내만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왕따’시키겠다고 공언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 우선 정책의 ‘후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까지 중동을 찾았지만, 원유 증산과 이란 핵 문제 대응, 아랍·이스라엘 관계 개선과 러시아·중국 견제 등 현안에서 어느 것 하나 명시적인 협조를 약속 받지 못했다.
‘인권 정책 후퇴’ 비판에도 강행
기대하던 원유 증산 답변 못 얻어
‘중동판 나토’ 구축도 성과 없어
외신들 “빈손 귀국” 냉랭한 평가
CNN방송,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걸프협력회의(GCC)와 정상회담에서 “국제적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에너지 생산업체들은 이미 증산했으며 향후 수개월간 벌어질 일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을 포함한 OPEC+의 원유 증산 결정을 기대하는 발언이었지만 사우디는 이를 바로 일축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사우디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면전에서 잘라 말했다.
회담 이후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증산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지만,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 방문 기간 중 원유 증산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공공의 적’인 이란을 고리로 사우디, 이스라엘을 묶으려는 시도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토대로 이란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연합 방공망, 이른바 ‘중동판 나토’ 구축을 추진해 왔고, 이번 순방을 계기로 구체화하려 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중동 국가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란 핵 저지라는 공동 목표를 두고서도 실무 협의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NYT는 “러시아를 억제하고 중국을 압도하는 게 더 큰 목표라면 불쾌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는 독재자들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배경을 설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 등으로 발생한 유가 상승은 러시아를 오히려 이롭게 하는가 하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원유 증산의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우디의 도움이 절실할 수밖에 없고, 결국 ‘왕따’시키겠다고 했던 무함마드 왕세자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굴욕’이었다.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자 간 회담 현장에서는 한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님,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왕따입니까”라고 소리치자 자리에 앉아 있던 무함마드 왕세자가 옅은 미소를 띠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외신은 이를 뭔가 우쭐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불운을 기뻐하며 기분 나쁜 방식으로 비웃는다는 뜻을 담은 'smirk'로 표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세계가 더 경쟁적으로 되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 더 복잡해지면서 중동이 미국의 국익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 미국이 중동을 떠나 중국, 러시아, 이란이 그 공백을 채우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호의 손짓을 보냈지만 순방 후 외신에서는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간 미국이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와의 만남에서 ‘주먹 인사’로 관계 개선에는 첫발을 내디뎠지만 큰 성과가 없어 방문할 가치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