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소상공인’ 빚 최대 20년 나눠 갚도록 채무 조정 유도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상담 창구를 방문, 대기 중인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만기연장·상환유예를 받아 온 소상공인 대출에 대해 혜택 종료 후에도 은행들이 최대 10∼20년의 장기 분할상환을 자율적으로 지원하도록 유도한다.
청년·서민·소상공인 등 취약층에 대한 민생안정 금융지원 대책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대책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 줄 은행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새출발기금 지원 빠진 대출자 대상
금융위, 은행에 기금 수준 조치 권고
실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신청 때
은행 수용 살필 점검단 가동 계획도
일각선 “도덕적 해이 불러온다” 비판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대출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9월 말까지 상환이 곤란한 취약층 대출자에게 원금 감면 등 채무 조정을 하는 ‘새출발기금’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이 기금의 지원 대상에서 빠진 대출자들의 경우 은행이 기금과 동등한 수준의 채무 조정 조치를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새출발기금은 대출 상환이 어려운 취약층 대출자의 30조 원 규모 부실 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을 해 주는 새 정부의 민생금융지원 핵심 사업이다.
정부는 앞서 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재정자금 7000억 원으로 새출발기금 조성 재원을 마련했다. 거치 기간은 최대 1∼3년이며 최대 10∼20년 장기·분할 상환에 대출금리도 내려 준다. 연체 90일 이상 부실 차주에 대해서는 60∼90%의 원금 감면도 해 준다.
금융위는 새출발기금 지원요건에 해당하는 대출이라 하더라도 실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고 상환 능력이 있다고 은행이 자체 판단한 일부 대출은 기금에 넘기는 대신 은행이 자체 관리를 할 유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부득이 만기연장·상환유예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향후 정상적인 매출회복이 예상되는 소상공인의 대출은 낮은 가격으로 기금에 넘기는 것보다 은행이 직접 만기연장을 해 주며 계속 원리금을 상환받는 게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은행에 잔류하는 대출에 대해선 새출발기금과 같은 수준의 상환유예(최대 1∼3년) 및 장기·분할상환(최대 10∼20년) 혜택을 부여하도록 유도한다는 게 금융위의 복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금융 부문 민생 대책을 발표했으며 후속 조치를 준비 중으로 금융위원장이 금융권과 소통해 나갈 것”이라면서 “은행에 부실 채무를 새출발기금으로 넘기든지 아니면 은행 자체적으로 새출발기금과 동일한 조건으로 채무 조정을 해 달라고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폐업, 부도 등으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의 채무의 경우 새출발기금이 대출채권을 은행들로부터 전량 넘겨받은 뒤 원금 60∼90% 감면(연체 90일 이상 부실차주)을 포함한 채무조정을 해 줄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체 90일 이상 부실차주에 대해 새출발기금이 아닌 은행이 직접 60∼90% 수준의 원금 감면을 하는 상황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금융당국은 9월 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의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종료와 관련해 대출 소상공인들이 원할 경우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대출 만기나 상환 유예를 연장해 줄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해당 대출자들이 신청할 경우 은행이 자율적으로 90∼95% 수준까지 만기를 연장하는지, 상환 유예해 주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점검단을 가동할 예정이다.
기존 유예 원리금은 최대 1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도록 이미 조치했다.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가 종료된 10월부터는 소상공인 대출 부실 위험을 정부와 더불어 은행들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9월에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를 종료해도 될 정도로 차주별 맞춤형 지원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은행권에 대해 점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이 취약층을 위한 은행의 공적 역할을 강조함에 따라 은행들이 신한은행처럼 취약층을 배려한 금융 상품을 추가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금융당국은 금리가 급등하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취약층을 보호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란 입장이지만, 개인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실히 빚을 갚고 있는 우량채무자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면서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정책이 구체화할 경우, 차주들 사이에서 ‘빚을 안 갚고 버티면 탕감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질 수 있다.
또 청년층의 경제적 재기를 위해 지원에 국가가 나선 것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영끌·빚투족들이 낸 빚을 성실하게 노동한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지는 게 적절하냐는 것이다.
이주환 선임기자 jhwa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