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쇠퇴 또는 소멸, 지방도시 분투기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10여 년 전, 부산지역 대학생의 일자리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졸업 후 얼마의 초봉을 원하느냐?’라는 질문에 대부분 300만 원을 원했다. 놀라운 건 기사에 달린 댓글이었다. 자기 형이 수도권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람은 ‘지방대 졸업자가 감히 그러한 금액을 받을 자격이 있나?’라며 비아냥댔다. 청년 취업 문제에 공감할 줄 알았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날 저녁 연구실 학생들에게 직접 들은 지방 혐오는 더욱 심각했다. 서울로 온 지방 청년들을 ‘지잡대(地雜大)’를 넘어 ‘지잡충(地雜蟲)’이라고까지 비하한다는 말은 지역 청년들 사이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전국의 청년들은 서울로 계속 몰려가고, 지방의 인구 감소는 계속 진행 중이다.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은 전국 1000대 기업 매출액 비중에서 수도권이 약 90%대를 차지하는 초집중의 수도권 공화국이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수도 이전과 혁신도시 등 국토 균형발전 정책에 부정적이었던 몇몇 수도권 전문가들의 논리를 기억한다. 그들은 수도권 집중 투자가 국가 전체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수도권 집중은 가속화되었다.
인구감소 걱정보다 행복 증가 목표
지역 간 상생과 협력의 길 모색해야
지방도시 행정의 전략적 접근 필요
2017년 발간된 중앙대 마강래 교수의 〈지방도시 살생부〉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책은 지방도시 쇠퇴 문제에 관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논리는 차치하고라도 서울지역 전문가가 직접 지방도시 쇠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했다. 현재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 쇠퇴는 국가 의제가 됐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연일 지방을 방문해 ‘지방시대’를 열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률이 전국 최고 수준인 부산에서는 시장이 직접 나서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지방 쇠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소멸론의 원조로 꼽히는 일본 ‘마쓰다 보고서’는 2015년 〈지방소멸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이에 근거해 거점(압축)과 연결(네트워크) 중심의 지방창생 전략을 마련했다. 거점 발전과 광역교통 대책 중심으로 이루어진 부울경 메가시티 전략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물론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지방은 절대 소멸하지 않으며, 중요 거점개발 중심의 지방소멸론적 시각은 오히려 이로부터 소외되는 지역의 소멸을 앞당기는 위험한 신자유주의적 주장이라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효율성 위주의 지방소멸론에 입각한 대책보다는 지역 자긍심 살리기, 의료나 돌봄, 주거와 같은 기본 사회서비스 제공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 증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 과소화에 대한 조바심보다는 자연과 공생하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지방의 농·산·어촌에서 살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부합하는 움직임이 있다. 거점개발 중심의 메가시티 전략이 구체화하던 올해 초 정부는 지방소멸 대응 기금을 만들어 매년 1조 원씩, 10년간 인구 소멸 지역으로 지정된 기초지자체에 지원하기로 하였다. 전국의 89개 기초지자체가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부산에선 동·서·영도구가 해당됐다. 해당 기초지자체는 일상적 행정 업무에서 벗어나 지방쇠퇴를 극복할 마중물로서의 지역활성화 계획을 수립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에도 몇몇 지자체들은 지역 특성을 고려한 계획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인구 유입을 위한 아토피 치유 마을과 학교, 목재 친화 도시, 한옥 전문인 양성, 전출 인구 최소화를 위한 공영버스 인프라 구축, 폐광지역 응급의료 기반 구축, 일시 체류와 관광 등 생활 인구 유치를 위한 소규모 MICE 사업, 서핑 메카 도시 조성 등 각 지역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쇠퇴 혹은 소멸을 겪고 있는 지방도시 행정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행정뿐만 아니라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지역 활동가들의 전문성 함양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지역의 역할도 현재와 같이 진행되는 중앙으로의 집중이 가속화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최근 논의되는 반도체 학과 정원의 수도권 내 확대는 지방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또한 이해관계에 의해 또다시 흔들리고 있는 부울경 메가시티도 과도한 거점개발론을 지양하고 지역 간 상생과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 간 이익의 공유만이 균형발전으로 가는 길이다.
이와 함께 기초지자체도 광역지자체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실력을 키워야 한다. 혁신적 계획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 특성을 반영한 창의적인 지역발전 계획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소멸 위기에 굴하지 않고 지방시대를 여는 환골탈태한 지방도시 행정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