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노무현과 윤석열, 같은 듯 다른…
최세헌 해양수산부장
30년 전 얘기다. 기자가 대학생이던 시절, 추석 명절이 지난 뒤 서울이 고향인 한 친구를 학교에서 만났다. 그 친구는 기자에게 “추석 때 촌에 갔다 왔니?”라는 안부 인사를 건넸다. ‘촌’이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응, ‘부산’에 갔다 왔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당시 일부 서울 친구들의 인식은 그랬던 것 같다. 대한민국 제2의 수도, 도시인 부산도 서울 사람들에게는 그저 ‘촌’에 불과했다.
‘지방소멸’ 혹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오래된, ‘거대 담론’을 논하기에 앞서 기자의 시시콜콜한 경험담을 소개한 이유는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같은 인식과 격차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고착화 그리고 더 가속화 됐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그 당시에도 ‘서울 공화국’, ‘서울대 공화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격차는 더 벌어졌다.
수도권과 지방, 좁혀지지 않는 간극
지방소멸 막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땜질처방 대신 새 패러다임 만들 때
‘서울 공화국’은 그 범위를 수도권으로 더 넓혔다.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어졌다. 2020년 6월 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는 통계청 자료가 나왔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매출액 기준)의 본사 현황은 2010년 수도권 82개, 비수도권 18개에서 2020년 수도권 91개, 비수도권 9개로 수도권의 비중이 더 올라갔다. 100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비율은 마찬가지다. 대학 평가를 봐도 전국 4년제 대학의 상위 17곳이 모두 서울 소재 대학이다.
인구, 일자리(기업), 교육 등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는 갈수록 더 벌어지는 셈이다. 사실, 이 같은 수치를 나열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무의미하다. 수도권에 가려 지방이 소멸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해마다 무수히 쏟아지고 있어 대부분의 지방민들은 이미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해야 지방소멸을 막고 우리나라가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지방의 위기를 감지하고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던 대통령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지역균형발전이 꼽히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지방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중앙은 이를 도와줘야 한다. 나는 비상한 결의로서 이를 추진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강행했다.
2022년 7월 8일 민선 8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정부가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을 스스로 육성할 수 있도록 하고 중앙정부는 교통 접근 권한을 공정하게 보장해 주는 게 중요하다. 중앙지방협력회의 역시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지역 스스로 경쟁력을 찾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20년이라는 간극을 떠나서, 묘하게 두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인식은 비슷하다. 아니, ‘지방 스스로, 중앙은 지원한다’라는 요지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방 위기에 대한 깊은 고민과 철학으로, 그 첫 대책이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었고, 수도권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지방소멸을 막을 첫 걸음으로선 더할나위 없었다.
윤 대통령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시즌2는 일부 공공기관의 반대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고,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반도체 관련학과 증원이 대부분 수도권 대학에 집중돼 오히려 지방대를 고사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정책이나 돈줄과 권한이 꽉 막힌 지자체에게 ‘지방 스스로’라는 발상만 가지고는 지방소멸을 막기에 한계에 부닥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년 전의 패러다임을 계속 고수한다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할 의지가 없거나 지방소멸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다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국세를 대폭 지방세로 전환시키든지 지자체의 권한과 자율권을 크게 강화시키든지, 또는 민간기업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거나 중앙부처를 각 지방 특색에 맞게 옮기거나, 유명 대학과 의료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든지 하는 뭔가 획기적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공공기관 몇 개를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임기응변식 땜질처방이 아니라, 국가균형발전을 국정 우선과제로 두고 근본적으로, 종합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대한 현상도, 문제점도 이미 알고 있으니, 지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cornie@busan.com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