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68. 공천을 틈틈이 해?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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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못 믿는 분도 있겠지만, 잘못 쓰인 말이나 잘못된 문장을 보면 가슴이 아파 온다. 뭔가, 말이 학대받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이건 틀린 글을 못 참는 교열(어문)기자의 직업병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상태인 것이다.

‘…양파즙, 레몬즙, 허브 같은 천연 향신료로 맛있는 저염식 저당식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저염식 저당식의 음식’이 바로 통증 유발 물질이다. 저염식이 ‘소금을 적게 넣어 만든 음식’이고, 저당식이 ‘설탕을 적게 넣어 만든 음식’인데, ‘저염식 음식, 저당식 음식’이라니….

‘업계에 따르면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지난달 편의점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었다.’

이 사진기사 설명에서는 20% 이상 늘어난 게 ‘매출’인데, ‘증가율’이 20% 이상 늘었다고 썼다.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이다’라야 했던 것.

‘사천 짬짬이 공천을 막기 위한 중앙당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예전에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이준석 당대표와 논전 중 페이스북에 올린 글인데, ‘짬짬이 공천’은 틈틈이 공천한다는 뜻.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짬짬이: 짬이 나는 대로 그때그때.(언니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짬짬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도왔다….)

하지만 저기에서는 ‘서로 짜고 공천한다’는 뜻이어서 이 말을 써야 했다.

*짬짜미: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아내의 밤늦게 돌아오는 그 일에 분명 노파의 짬짜미가 있으리라.〈현덕, 남생이〉)

아래는 어느 잡지에 나온 문장.

‘아이젠슈타트, 약간 생소한 도시일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을 지원했던 헝가리의 귀족 가문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본거지가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거 뭐, 난감하다. ‘사람이라면’과 호응하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본거지(가 있는 도시)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면 괜찮았을 듯.

‘원래 채석장이었던 이 자리는 2~3천 만년 전에는 해저의 일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석회암 암석에는 선사시대 산호초나 성게를 볼 수도 있다.’

같은 글에 나오는 문장인데, ‘2~3천 만년 전→2천만~3천만 년 전, 해저의 일부였다고 한다→해저였다고 한다, 암석에는→암석에서는’으로 손봐야 한다.

어쨌거나, 이렇게 뒤틀리고 학대받는 말을 치료하는 방법은, 퇴고와 교열에 더욱 애쓰는 수밖에는 없는데….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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