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돈 맡겨도 되나”… 농협, 올 상반기만 횡령 9건 ‘내부통제 구멍’

김진호 rplk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본관.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본관. 연합뉴스

농협에서 또다시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 총 9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금융업의 근간인 ‘고객 신뢰’를 저버리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성서 직원이 대금 5억 가로채

금감원장 개선 지시 후 발생 충격

“직원에 권한 집중된 업무도 문제”

금융권에선 농협중앙회의 내부 통제시스템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타 금융사에 비해 횡령 사건이 유독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알면서도 이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 경기 안성시 지역농협 직원이 물품 대금 5억 원을 가로채고 잠적한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해당 직원은 올 2~5월 영농조합에서 잡곡을 산 것처럼 허위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대금 5억 원을 자신의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에서 횡령은 올 상반기(1~6월) 확인된 것만 9건에 달한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에서도 올해 횡령 사건이 발생하긴 했지만 우리은행과 KB저축은행 등이 각각 1건에 불과한 점을 볼 때 농협에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 금융권의 횡령 사고 비중에서 압도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달에는 경기 광주 지역농협에서 한 직원이 스포츠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삿돈 50억 원을 횡령했다. 또 서울중앙농협 구의역 지점 한 직원은 고객 명의를 도용해 50억 원을 빼돌려 경찰에 체포됐다. 경기 파주시 지역농협에서도 한 직원이 5년간 75억 원을 횡령해 가상화폐 투자에 사용해 구속됐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접 내부통제 운영 실태를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라는 지시 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직접 경고를 했음에도 불과 9일 만에 횡령 사건이 또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지난 11일 신협·농협·수협·산림조합중앙회 상호금융 대표이사와의 간담회에 참석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역량을 강화해 달라”며 “중앙회는 조합의 임직원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여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질책한 바 있다.

금융권에선 상급 기관인 농협중앙회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횡령 사건을 사실상 방치한 꼴이 됐다고 지적한다.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내부 통제시스템을 정비하고 훨씬 더 강도 높은 근절 대책을 내놓지 않은 점이 문제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모가 작고 영세한 단위 농협까지 직접 들여다보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검사 의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농협의 특수한 업무 구조도 원인으로 꼽는다. 규모가 작은 지역 농협의 경우 인력 순환 등이 원활하지 않아 사실상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횡령 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한 직원이 퇴사하면 그 업무까지 기존 직원에게 맡기는 등 업무 효율화를 이유로 직원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는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진호 rpl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