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장실 고고학
김재현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인간은 언제부터 화장실이라는 것을 뒀을까. 그에 대한 정확한 추정은 어렵지만 유럽의 네안데르탈인 연구에서, 정해진 한 곳에서 여러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똥화석(糞石)이 발견돼 적어도 이들은 볼일 볼 장소를 정해 뒀던 것으로 보고 있다.
80년대 후반, 일본에서 재미있는 고고학 조사가 있었다. 한국과 가까운 후쿠오카 고로깐 유적에서 화장실이 발굴된 것이다. 이 고로깐은 8세기 무렵, 당시 신라 사신이 오면 일차적으로 묵던 일종의 영빈관이었다. 그런데 여기 고로깐에서 당시의 화장실이 발견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던 시대에는 당연히 화장실도 있었을 것인데, 이 화장실은 바로 신라 사신들이 묵던 곳에 있던 화장실이라는 점이다.
장소가 화장실이다 보니 당연히 똥화석도 나왔고 당시 화장지인 뒤처리용 나무막대도 나왔으며 이와 함께 많은 기생충 알이나 곤충 껍질 등도 나왔다.
따라서 이렇게 얻어진 자료 분석을 통해 당시의 여러 가지 재밌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 똥화석을 통해서는 그 속에 포함된 콜레스테롤에서 남녀 화장실이 이 시대에 이미 구분돼 있는 것을 알았으며 심지어 여자화장실 한쪽 편에서 남성의 설사 똥에서 보이는 수치의 콜레스테롤이 나와, 배탈이 난 신라 사신이 급한 김에 염치 불구하고 여자화장실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우스개 추측마저 돌았었다.
또 화장지로 사용된 나무막대는 지금의 부챗살보다 조금 넓게 깎아 다듬은 나무편으로 화장실 앞에 둔 항아리 속에 꽂아두고 사용하던 것이다. 이것에는 간혹 붓으로 쓴 글자들이 확인된 경우도 있는데 당시 나무로 만든 책이나 장부, 꼬리표 등으로 사용되던 목간(木簡)을, 다시 화장지(주목)로 최종 사용한 것이다.
과거 우리네가 화장지 대신 신문지나 달력을 사용한 것을 생각하면 그 유래 또한 오랜 것이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함께 수집된 기생충 알이나 곤충 껍질에서는 회충, 요충, 편충, 간디스토마 등이 검출된 사실에서 당시의 조리법이나 식습관이 재료에 열을 가하거나 끓이는 방법보다 식재료를 그대로 사용해 생식하는 습식이 많았고 이미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런 화장실 유적은 한국에서도 발견됐는데, 익산 왕궁리 유적의 화장실 유적이 그것이다. 2002년 발견된 이 화장실 유적은 왕궁리 중심 유적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장실인데 담 밖으로 이어지는 배수로와 나란히 파진 직사각형 구덩이 3개로, 구덩이 사이에는 칸막이를 설치한 나무 기둥 구멍도 남아 있었다.
변소로 사용한 구덩이에도 나무구멍 자리가 있어 구덩이 위쪽에 나무 널빤지 같은 것을 걸치고 그 위에 사람이 쪼그리고 앉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구덩이 안에서는 소복이 쌓인 뒤처리용 나무막대, 밤껍질, 콩류. 참외씨 같은 것과 함께 누군가 빠트린 듯, 짚신도 한 짝 나왔다. 그 외 기생충 알들도 왔는데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한 채소를 먹거나 익히지 않은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때 생기는 회충들이었다.
이 화장실 유적은 그 발견된 위치가 왕궁리 유적 중에서도 북쪽 외곽의 도금제품과 유리제품을 만들던 공방지 근처에서 발견돼 아마도 7세기 공방에 근무하던 장인들이 사용한 공동화장실인 것으로 짐작되는 것이다.
구덩이는 어느 정도 일정량이 채워지면 담 밖으로 연결된 배수로로 흘러나가게 돼 있는 지금의 정화조식 화장실이다. 익산 왕궁리유적 출토 화장실 유적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나온 나무막대(지금의 화장지), 그 나무막대를 꽂아두던 항아리 등 출토품은 2020년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니 금은보화의 화려한 옛 유물을 보는 재미도 좋지만 옛사람들의 삶 자체를 구경해 볼 수 있는 화장실 견학도 또 다른 재미일 것이라, 가족 나들이로 한번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