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클래식음악과 패션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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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피아니스트 김혜정은 선이 굵고 힘 있는 연주자다. 앙드레김의 드레스를 연주복으로 즐겨 입었다. 공연 직전 분장실에 와 달라는 청을 받았다. 드레스의 어깨가 자꾸만 흘러내리니 접착테이프를 붙여 달라는 것이다. 연주복으로서는 볼썽사나울 듯하여 만류하니 단호하게 말했다. “연주만 잘하면 되죠. 드레스 모양이 무슨 상관이에요.” 등 뒤에 투명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감미롭고도 극적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무대에서 여성 솔로이스트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것이 관례다. 이러한 문화를 과감하게 깨뜨린 이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네조피 무터다. 그는 오프숄더 스타일로 무대에 등장했다. 예술사회가 술렁이는 것은 당연했다. 당혹스럽기는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오프숄더 드레스는 곧 그의 상징이 되었다. 1990년대의 이야기다. 최근 연주복으로 세간의 입길에 오른 연주자는 단연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아닐까. 아슬아슬한 초미니스커트와 아찔한 킬힐은 드레스 스캔들이라 불릴 만큼 충격적이고도 도발적이다.

옷차림새는 언행만큼이나 직접적으로 그 사람을 표상한다. 복색은 계급이나 혈통, 민족, 세대, 종교, 출신지, 사회적 지위, 경제력, 정치이념 등을 드러내는 기표다.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행위다. 어떤 옷을 입는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보이지만 대단히 상징적이다. 옷이나 장신구는 선택과 배제를 통해 일정한 의미를 구축한다. 가령, 바로크시대 음악가들은 가발을 쓰고, 퀼로트라는 부풀린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었다. 궁정이나 귀족이 고용한 예술인이라는 표지다. 프랑스혁명 당시 공화당원은 앙시앵레짐의 복식을 벗어던지고 상퀼로트, 즉 긴바지를 입었다. 베토벤도 긴바지 차림이다. 예술의 자유를 상징한다. 유자 왕은 밴쿠버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연주한 적이 있다.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심사에 불만을 표현한 것이란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복장의 전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지는 불과 30년 남짓이다. 한국 교향악단의 여성단원들이 검정 긴치마 대신 바지를 입었던 때도 그즈음이다. 전통을 자랑하는 뉴욕필의 경우에는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그만큼 음악사회가 보수적이지만, 혁신의 물결은 거세고 빠르다. 무대뿐만 아니라 정치영역도 마찬가지다. 이즈음 국내외 정치인들과 대통령 부인의 패션에 관심이 많다. 패션은 메시지나 개성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 자체로 찬사나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옷차림새가 아니라 옷이 표현하는 본질이다. 좋은 음악에 몰입할 때면 연주자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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