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왜란·호란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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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조선 편 전 5권 / 문사철 강응천

19세기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한국사에서 인민이 탄생한 세기였다. 동학농민전쟁의 녹두장군 전봉준이 압송되는 장면. 부산일보DB 19세기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한국사에서 인민이 탄생한 세기였다. 동학농민전쟁의 녹두장군 전봉준이 압송되는 장면. 부산일보DB

‘민음 한국사’ 조선 편 전 5권은 의욕적 기획의 책이다. 2014~2015년 출간된 것으로 서술이 상당히 명쾌하고 밀도 높다. 다시 조선시대를 꿰뚫어야 하는 것이다. 근대를 우회하거나 추월할 ‘가지 않은 길’이 그 500년 어디엔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저 비릿한 말 ‘서구 근대’, 그것을 넘어서자는 열망 속에서 상당한 공력이 들어간 이 시리즈가 좀 더 알려지고 읽혔으면 하는 것이다. 총 35명의 연구자들이 5권을 공동 집필했다.

5권 각 권은 100년씩, 한 세기를 크게 3장의 구도 속에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책의 앞부분에 세계사적 구도 속에서 조선의 각 세기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세기별로 나눠 수록… 제목 함축적

16세기 말 중국·일본 정권 바뀌어

조선은 ‘대동법’ 실시로 왕조 유지

18세기는 위·아래서 새 세상 갈망


조선의 15세기는 찬란했다. 1권 이름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에 그 점이 표현돼 있다. 15세기 조선은 놀랍게도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를 만들었다. 세계 지도사가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극찬한 지도다. 세계를 포섭하는 그 거침없는 시각은 그야말로 조선이 건국과 동시에 절정을 구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과연 태종·세종 대 조선은 농업·문자·예악·천문 왕국에 이르렀다. 지금 한국의 언어생활은 15세기 조선의 토대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각 권 이름이 상당히 함축적이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17세기, 대동의 길〉 〈18세기, 왕의 귀환〉 〈19세기, 인민의 탄생〉이 그것이다. 각 세기를 이어 붙여 여하히 한 줄로 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게 이 시리즈를 읽는 관건이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는 사대부들의 반복되는 떼죽음을 거쳐 이뤄졌다. 선조 대에 이황과 이이가 집대성한 제왕학은 조선적인 사림 정치가 드디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광조와 기묘사림의 숱한 죽음이 그 뿌리에 놓여 있었다. 사림 정치는 쇠망에 이를 뻔한 조선 사회를 갱신했다.

그러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질서를 다 흔들어버렸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도요토미에서 도쿠가와로 정권이 바뀌었고, 명도 결국 무너졌으며 청이 건국했다. 그러나 조선은 왕조를 이었다. 왜란과 호란, 두 차례의 천하대란에 휘말린 조선이 살아남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조선 시대 최고의 개혁으로 평가되는 대동법 실시로 민심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심을 얻는 데 눈을 돌린 것은 지배층이 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역사는 묘한 균형을 찾으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17세기 조선이 열었던 ‘대동의 길’이라는 거다.

동아시아적 판도에서 보면 중국과 일본의 ‘완전한’ 왕조·권력 교체처럼, 표현하자면 후기 조선은 전기 조선과는 ‘전혀 다른’ 왕조는 아니었을까 하는 거다. 상품화폐경제가 전면화하는 새로운 사회로 진입했다. 동아시아 속 후기 조선은 이데올로기 쪽으로 내달으며 스스로 중화를 자처하는 데 이른다. 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랑캐 왕조는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할 거라며 조선은 ‘홀로 남은 유교 문명국’을 자처했다. 조선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전형적인 주자학 국가로 재탄생한 것이 17세기였으며 그것은 18세기로 가파르게 이어진다.

‘왕의 귀환’으로 불러낸 18세기 왕은 영조와 정조다. 둘은 탕평 군주이자 계몽 군주였고 절대 군주였다. 18세기의 두 왕은 새로운 변화를 기존 틀 속에 수용하려 한 ‘한계적 군주’였다. 그들이 군주인 한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세계사적으로 시민이 도래했고, 상업 경제가 동아시아를 바꾸고 있었고, 오랑캐 청이 융성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거기서 조선의 대응은 다양했다.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북학론이 제기됐고, 전통 주자학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서학과 천주교 신앙의 수용이 일어났다. 중인들의 위항문학 운동이 펼쳐졌으며 광대패들이 전국 주요 장터를 돌아다니며 양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위로부터, 아래로부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던 것이 또한 18세기였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과 변화의 기운을 답답하게 욱여넣은 것이 세도정치였다. 그리고 거의 한 세기의 시간을 인내하면서 드디어 분출한 것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 19세기 인민의 탄생은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 거였다. 인민의 탄생에 이른 조선 역사, 19세기 역사를 천착하다 보면 인간 해방의 가치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동안 잊혔던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책의 희망적 메시지다. 문사철 강응천 편저/민음사/각권 270~290쪽/각권 2만 3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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