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 기업·대학에 지나치게 쏠린 반도체 정책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동진쎄미켐에서 열린 '반도체 산학협력 4대 인프라 구축 협약식'을 마친 후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대규모 투자와 인력 양성,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투자와 인력 양성이 수도권에 집중돼 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의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정부가 21일 발표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은 2026년까지 5년간 기업들이 반도체에 340조 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R&D)과 설비 투자에 세제 혜택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10년간 반도체 인력 15만 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투자 계획이 지금도 심각한 수준인 첨단산업의 수도권 쏠림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데 있다.
새 정부 각종 수도권 규제완화 노골화
지역균형발전 의지 있나 지역민 반발
정부는 수도권인 경기 평택·용인의 반도체 단지 인프라 구축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산업단지 조성 인허가를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심지어 반도체 단지의 용적률을 기존 350%에서 490%로 최대 1.4배 상향 조정하고 인허가의 신속 처리를 의무화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도 개정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 기업을 지역으로 분산시켜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나서 수도권 집중의 길을 터 주고 있는 것이다. 인력 양성도 말로는 수도권과 지역 대학의 형평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기업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대학의 쏠림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지역 대학들이 사실상 수도권대 편법 증원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새 정부가 출범 두 달 만에 수도권 규제완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산업입지 개선을 위한 기업 간담회’에서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과 관련한 규제 등을 완화하기 위해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에 공장의 신·증설 제한을 완화하고 외국인투자기업에만 적용되던 수도권 경제자유구역 내 공장 신·증설을 국내 유턴기업에게도 허용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업하기 좋은 수도권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수도권 규제 완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목청을 높여 반대해 왔던 지역의 입장에서는 허탈할 따름이다.
지역균형발전의 본질은 결국 수도권에 편중된 일자리와 인력을 지역에 고루 퍼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새 정부가 말로는 균형발전을 내세우면서 실제는 수도권 과밀화를 불러 올 각종 투자와 규제완화를 수도권에 집중하는 것은 균형발전에 대한 빈약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역의 절박한 현실을 몸으로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균형발전을 촉구하는 영남·호남·충청·강원·제주 시민사회단체는 20일 합동으로 성명을 내고 지방대학 육성과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의 전국 분산, 2단계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통합적 균형발전 대책을 요구했다. 새 정부의 균형발전 의지에 대한 지역민들의 의구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