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녹지에 아파트 짓겠다는 LH… 위기의 ‘공해 차단 숲’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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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번화가인 남구 한 공동주택 옥상에서 바라본 야음근린공원. 공원 너머로 화학공장이 즐비하다. 이 도시숲은 공단과 주거지 사이에서 공해 차단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울산지역 번화가인 남구 한 공동주택 옥상에서 바라본 야음근린공원. 공원 너머로 화학공장이 즐비하다. 이 도시숲은 공단과 주거지 사이에서 공해 차단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공해를 막는 고마운 산림을 뭉개고 아파트를 짓는 게 공익사업인가요? 시민이 무슨 ‘공해 방패막이’도 아니고….”

지난 24일 오전 울산 남구 울산도서관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옛 야음근린공원에 추진되는 공공 임대주택 건립 문제에 대해 “반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주민 서너 명도 “나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아파트 지을 곳이 그렇게 없느냐”며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역사회의 개발 중재안도 거부한 채 ‘도심 속 허파’로 불리는 야음지구(옛 야음근린공원)에 수천 세대 아파트 건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공기업이 시민 여론을 무시하고 녹지 훼손과 난개발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LH, 민관협의회 통한 울산시 제안 거부

야음지구 일대 3500세대 아파트 추진

“이윤만 좇는 행태… 시민에 선전포고”

환경단체 반발, 시에도 입장 표명 요구


25일 울산시와 LH 등에 따르면, LH는 최근 시에 공문을 보내 ‘울산 야음지구의 공해 차단녹지 강화 방안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송철호 전 울산시장 시절 민관협의회가 공론화 끝에 도출한 ‘조건부 개발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야음지구는 2020년 7월 일몰제로 공원시설에서 해제돼 58년 만에 개발행위가 가능해진 곳이다. 면적은 약 71만㎡로 축구장 100개 크기에 달하며, 이 중 사유지가 50만 9000㎡이다. 참나무와 잣나무, 사철나무, 동백나무, 전나무 등이 빼곡하게 녹지띠를 형성해 공단에서 도심지로 넘어오는 악취, 공해를 막는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한다.

LH는 야음지구를 포함한 약 83만 6550㎡에 2027년까지 3596세대 공공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일몰제 시행 전인 2019년 12월 LH 제안으로 이곳을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로 승인했다.

공해 차단 숲인 야음근린공원이 석유화학공단과 주거지 사이에 울창한 녹지띠를 형성하고 있다. 사진 속 오른편 아래 보이는 건물이 울산도서관이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공해 차단 숲인 야음근린공원이 석유화학공단과 주거지 사이에 울창한 녹지띠를 형성하고 있다. 사진 속 오른편 아래 보이는 건물이 울산도서관이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당시 지역 정치권과 환경·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했고, ‘주택 개발이냐, 공원 존치냐’ 논란이 일었다. 환경단체는 “야음공원이 개발돼 숲과 나무가 없어지면 석유화학공단에서 날아오는 악취와 공해 물질이 시민에게 바로 노출된다”고 우려했으나, LH는 “주거복지 실현도 중요하다”며 개발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논란과 갈등이 커지자, 울산시는 ‘울산형 숙의 민주주의 1호’ 안건으로 설정해 공론화 절차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주민 대표, 시민단체, 울산시, 울산시의회, 남구청, 남구의회, 산단 관계자 등 14명이 참여하는 ‘야음지구 민관협의회’가 꾸려지면서 2021년 11월 30일부터 올해 2월 22일까지 야음근린공원 개발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민관협의회는 7차례 회의 끝에 LH의 개발 부지 중 공원·녹지 비율을 62% 이상으로 하고, 추가로 여천교에서 여천오거리까지 폭 200m, 최저 고도 35m 이상, 길이 약 1.2km 토성 형태로 ‘공해 차단 구릉지’를 조성하는 조건부 개발안과 개발 반대안 등 2가지 안을 울산시에 권고했다.

시는 결국 내부 협의를 거쳐 지난 4월 생태터널을 결합해 구릉지 조성 비용을 권고안보다 절감하는 형태의 대안을 LH에 제시했다. 민관협의회 관계자는 “조건부 개발안의 경우 개발 이익을 울산 시민에게 환원하자는 취지에서 도출했고, 개발을 막지 못할 바에야 (조건부 개발안이) 최적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민관협의회가 제시한 야음지구 공해 차단 구릉지 조성 개념도.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민관협의회가 제시한 야음지구 공해 차단 구릉지 조성 개념도. 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한데 LH는 공교롭게도 지방선거 이후 울산시장이 바뀌자마자, 시 제안에 퇴짜를 놨다. 민관협의회 권고안 도출로 일단락되던 야음지구 개발 논란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LH는 녹지 비율을 높이면 부지 매입 등 사업비가 증가해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울산시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LH 관계자는 “기존 계획대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녹지 비율의 경우 향후 울산시와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며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민선 8기 울산시가 전임 시장 시절 도출한 야음지구 조건부 개발안을 놓고 “현실성이 없다”며 재검토 의사를 밝힌 것도 LH 측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 관계자는 “개발은 LH가 하고, 승인권자는 국토교통부다. 지금까지 갈등영향분석도 하고 공론화도 해서 중재안까지 제시했다”며 “LH 측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울산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답답해하는 분위기다. 다른 시 관계자는 “울산시 제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LH가) 최소한 녹지 확보에 대한 다른 대안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공론화 이후 잠잠하던 환경단체 등은 LH와 울산시를 상대로 연일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LH가 민주적 절차로 마련한 공해차단녹지 강화안을 거부한 것은 울산시민의 건강권, 환경권, 행복추구권보다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우선하는 행태로, 울산시와 시민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김두겸 시장 또한 시민 건강권과 환경권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칠 것인지, LH의 사업권을 보호하는 정책을 취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 남구주민대회 조직위원회와 야음지구 주민대책위원회 등도 “LH는 야음지구 개발계획 백지화를 선언하고, 야음근린공원을 공해차단녹지로 조성하라”며 “국토부는 아파트 개발사업을 불허하고, 울산시 역시 시민 안전을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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