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간호법 제정, 시대정신인 ‘공정성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박준용 KNA 차세대 간호리더 전국대표회장·동주대 간호학과 3학년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는 18세기 독일 철학자 요한 헤르더가 처음 사용하고 헤겔이 개념적으로 완성했으나 동시대 소설가인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 등장하며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다원화된 시기에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 단 하나일 필요는 없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 크게 작용한 시대정신은 청년세대가 화두를 던진 ‘공정성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세대가 정책결정자와 우리 사회에 요구한 공정성이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그 누구도 이 주제를 선명하게 정의할 순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공정성은 단순히 하나의 사례나 분야에 국한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간호사가 동료 의료인과 일할 때 직업이 간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조직에서 차별받지 않는 것도 공정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분야처럼 서비스의 제공자와 피제공자의 지식수준이 크게 차이 나는 곳에서 피제공자인 환자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공정성이 실현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간호법이야말로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동료 의료인의 공정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한 조사에서 간호사의 56%가 간호사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이것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해서 현재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은 47.7%에 달한다. 평균 근무 연수는 7년 8개월 정도로 다른 직업과 비교해보아도 압도적으로 꼴찌에 가깝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 등은 1961년에 만들어진 지금의 의료법 체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숙련된 간호사가 현장에 많이 없다는 것은 환자가 좋은 간호를 받지 못하는 것과 직결된다. 성실하게 장기요양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낡은 의료법 체계 탓에 간호인력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다는 전망은 불편한 것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하다. 정말로 의료법에 문제가 없다면 우리 국민들 중 중증환자, 장애인, 어르신, 만성질환자에게 선진국 어느 곳과 비교해도 돌봄제공이 원활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1월, 필자가 올린 간호법 관련 국민 청원이 짧은 시간 만에 20만 명을 넘는 것을 보며 간호법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단순히 직능단체 간의 대립이 아니라 보건의료계에 공정성이라는 큰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느꼈다. 이 글을 통해 보건의료계에 한 가지를 묻고 싶다. ‘과연 우리나라 환자들은 공정한 돌봄을 받고 있는가, 간호사는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청년세대와 지금의 어르신세대에게 보건의료계가 답해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간호법이 좋아도 이론상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이에게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친구여, 이론은 모두 잿빛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