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엑스포 유치 사령부 '공군1호기'
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尹, 냉혹한 국제질서 속 고독한 외교전
나토 의제 상관없는 엑스포 마케팅 주력
향후 외교일정 ‘엑스포 유치’ 밑거름으로
부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염원돼야
스페인 마드리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민국 공군1호기는 짙푸른 남유럽 하늘길을 시원하게 가로질렀다. 비행기가 순항고도까지 올라가자 윤석열 대통령이 기내 기자간담회를 갖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자들은 필기도구를 꺼내고 노트북PC 전원을 켜느라 분주했다. 대통령실과 경호처 직원들은 객실 전면에 연단을 설치하고, 대통령 육성이 항공기 소음에 묻히지 않게 마이크 성능을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라는 첫 해외 일정을 마친 대통령의 외교성과에 조금의 흠집이라도 나지 않게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은 질의응답에 도움이 될 만한 메시지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간담회가 시작되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의 서방 안보체제 편입에 대한 중국의 불만, 수십 년간 누적된 불편한 한·일 관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나토 회원국 설득 등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가 이어졌다.
7시간의 시차, 분 단위로 쪼개 만든 빠듯한 일정 탓에 윤 대통령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다. 정치 초년생으로 버거울 만도 한데 고차 방정식과도 같은 민감한 국제외교에 관한 질문을 비교적 무난하게 받아 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윤 대통령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외교무대는 아니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완전히 올라탈 것인지, 적당히 기회를 보며 줄타기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수동적 외교 현장이었다. 세계사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고독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진 순간이었다.
그나마 윤 대통령이 마드리드에서 유일하게 주도할 수 있었던 이슈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였다. 우리 힘으로 치러야 하고, 그것을 위해선 다른 나라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윤 대통령은 10명 넘는 국가 정상들과 릴레이식 양자회담을 하면서 나토회의와는 상관없는 의제를 테이블에 올렸다. 어쩌면 외교적 무리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기자는 윤 대통령이 엑스포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를 나눴고 다른 정상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엑스포 유치에 대해 윤 대통령이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는지 떠보고 싶기도 했다.
때마침 간담회 이슈 전환이 필요했던 대통령실 대변인과 기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질문권을 얻은 기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해서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 협조 요청도 하고 많은 신경을 썼는데,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엑스포 유치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윤 대통령은 “만나는 정상마다 부산 얘기를 꼭 했다”고 말했다. 할 만큼 했다는 대국민 신고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대통령의 엑스포 유치 ‘방법론’이 취임 2개월여 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는 (엑스포 유치가)로비에 의해서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런 엑스포가 있으면 거기에서 자국의 산업성과에 대해 제대로 보여 주고 싶어한다.” ‘우리나라가 뭘 잘하니깐 지지해 달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엑스포에 오면 너희 나라는 이런 점에서 좋다’라는 객관적 관점으로 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엑스포를 국가 산업 발전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각국의 ‘홍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도록 엑스포 개최국은 자리를 깔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과거에 인정 엑스포를 두 번 했고, 동계 올림픽과 하계 올림픽도 유치했고, 또 월드컵도 유치한 국가이니 만큼, 그리고 전통산업 분야에서부터 디지털 이런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세계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당신 국가의 산업성과를 가장 잘 홍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고, 그리고 해양의 도시인 부산에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윤 대통령은 ‘오일 머니’를 앞세워 개발도상국 위주로 로비전을 펼치는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리 엑스포를 통해 참가국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맞춤형 전략으로 유치전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엑스포가 부산만의 이슈가 아닌 대한민국의 염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윤 대통령이 향후 외교일정에서도 엑스포를 계속 중요한 이슈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부산에서부터 열망이 끓어넘쳐야 한다. 대한민국 공군1호기는 엑스포 유치 이동 사령부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