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는 법 있는데 켜는 법 없다”… 구멍 난 법에 멈춘 화재경보기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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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정비 위한 정지는 명문화
재가동 시점 지침은 아예 없어
자칫 ‘대피 골든 타임’ 놓칠 수도
일괄 제어만 가능한 화재경보기
해운대 화재 참사 키운 원인 지적
동별 경보기 제어 시스템 필요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재실에 설치된 화재 수신기 모니터. 아파트 전체 세대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다. 김성현 기자·유가족 제공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재실에 설치된 화재 수신기 모니터. 아파트 전체 세대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다. 김성현 기자·유가족 제공

가족 3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진 부산 해운대구 고층 아파트 화재 사고(부산일보 6월 28일 자 8면 등 보도)와 관련해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 이후 재작동을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는 등의 제도적 허점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화재경보기 임의 정지 이후 지체 없는 재작동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법령의 미비점을 보완해야만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화재경보기 정지·재작동도 동별 제어가 가능하도록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소방시설법은 화재감지기와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의 기능과 성능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잠금·차단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소방시설 점검과 정비를 위해서는 정지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이 같은 예외 규정에 따라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화재감지기 오작동 등의 상황에서 화재경보기를 임의로 정지할 수 있다. 일부 아파트와 상가 등에서는 잦은 화재감지기 오작동 탓에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아예 경보기를 정지시켜 놓거나, 실제 화재 발생 여부에 대한 현장 확인 없이 미리 경보기를 끄고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지역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화재경보기는 요즘 같은 여름철엔 습기 등에 아주 민감해 실제로 출동해 보면 오작동인 경우가 많다”며 “경보 소음 민원 등을 우려해 실제 화재 여부에 대한 확인 없이 경보기를 끄고 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27일 불이 나 가족 3명이 숨진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아파트 화재 현장. 유가족 제공 지난달 27일 불이 나 가족 3명이 숨진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아파트 화재 현장. 유가족 제공



하지만 화재경보기 정지 이후 재가동 시점에 대한 구체적인 법령이나 지침이 없다 보니 경보기가 정지된 시간대에 실제로 불이 나면 ‘대피 골든 타임’을 놓쳐 대형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점검이나 정비를 위해 화재경보기를 임의로 정지할 수 있도록 한 법 규정이 경보기 정지 이후 발생한 화재 책임에 자칫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부산지역 한 소방관은 “화재경보기 정지 이후 재작동 시점이 오로지 현장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데, 점검·정비 이후 최대한 빨리 정지를 해제해야 하는 시점이 언제여야 하는지는 현장 상황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법으로 몇 분, 몇십 분 등으로 딱 잘라 정해 제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소방시설법에는 점검·정비를 위해서는 정지가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만 명시돼 있고, 점검·정비 완료 후 즉시 재가동해야 한다는 명시적인 문구가 없다 보니 화재 사고 발생 시 현장 방재 담당자들의 면책 사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점검·정비 완료 뒤 재가동을 의무화하는 문구를 법령에 넣어 방재 담당자들의 책임감과 안전 의식을 높일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재경보기 해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경보기가 재작동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주 (주)대한소방기술 대표는 “주택이나 아파트 같이 실내에서 불이 나면 방 전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3분 정도 만에 생긴다”며 “플래시오버가 지나면 화재감지기도 불에 타 작동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에, 3분가량 경과하면 화재경보기 정지가 자동으로 해제되도록 시스템화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파트 전체 동의 화재경보기가 연동돼 일괄 제어만 가능한 시스템도 이번 화재 참사를 통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화재에서도 관리사무소 측은 A동에서 실제 화재가 발생하기 앞서 B동에서 화재감지기 오작동이 발생하자 화재경보기를 정지시켰다. 동별로 화재경보기를 정지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면 관리사무소 측이 오작동이 발생했던 B동의 화재경보기만 해제하고, A동의 화재경보기는 정상적으로 작동시켜 불이 난 A동에 화재경보가 울렸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한 소방 전문가는 “아파트가 점차 대단지화 되는 상황에서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화재경보기 정지·재작동을 일괄 제어 방식이 아니라 동별로 제어가 가능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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